길 위에서 회개의 길을 찾다

(부제: repent of your sin & turn to God)

 

이희만 목사(roadmapbible 성경통독원장)

 

 

 

1. 서언

 

이번 포럼과 관련해 스페인 방문이 결정되고 나서, 나는 가슴이 설렜습니다. 유럽 땅을 처음 밟는 기분이 어떨까?’ 더구나 이곳 서반아는 요나가 가보고 싶어 했던 나라입니다. 결국 요나는 서반아로 가는 대신 물고기 뱃속으로 여행을 한 셈이지만 요. 신약의 바울사도도 이곳에 보고 싶어 했습니다.(서반아로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사도행전 1523)

이렇게 요나가 보고 싶어 했고, 바울사도가 선도여행지로 원했던 곳! 왜 여기에 보고 싶었을까? 궁금해 하며 나도 현지를 방문해 직접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유럽 포럼은 나에게 뜻 깊은 시간이 되어줄 뿐만 아니라, 본 포럼을 통해 나의 성경적 지평이 넓혀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대한민국에 신학교가 생기고 처음 목회자 교육을 한 때가 1901년입니다. 그리고 19071회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그 학교에 79번째 졸업식이 있던 날, 나는 졸업생 일원으로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 대학이 장로회신학대학 신대원입니다. 당시 저는 일반학부를 마치고 몇 년간 사회생활을 하다가 신학대학원에 진학해서, 그 땐 벌써 서른 살이 넘은 청년이었지요.

졸업과 동시에 전도사로 첫 부임한 나의 목회지는 약수동의 신일교회였습니다. 신일교회에 이어 후암동의 영주교회에서 약 4년 여간 목회수업을 쌓은 뒤엔 교회 개척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199131우리교회라는 이름으로 단독교회를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동안 저의 신앙생활과 목회여정을 돌아보노라면, 이리 저리 해매는 내 모양, 저 원수 조롱하도다.’ 라는 찬송가 가사가 절로 떠오릅니다. 신학교를 졸업한 이래 지금까지 저는 30년 간 목회현장에서 무던히도 몸부림을 쳐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실수투성이여서 하나님께 죄송하고 주변사람들에게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지난해부터 회개하고 153으로 임파테이션하여 실로암의 물을 계속 먹고 있습니다. 그동안 개척교회를 섬겨오면서 제게 많은 실수가 있었다는 것을, 그만큼 회개할 부분도 많았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을 성경을 통해 정리해 보고 싶었습니다.

 

 

2. 회개, 그리고 진리에의 회귀

 

성경을 회개라는 단어에 특히 중점을 두고 읽었더니, 그 핵심은 ‘repent of your sins & turn to God’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첫 설교(4:17)이셨고, 세례요한 역시 이 말씀을 처음 사용하습니다. 여기에서 회개는 ‘repent of your sins(3:2)’, 먼저 내가 지은 죄를 돌이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turn to God’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개신교beginner들은 ‘ad fonte’라고 불렀습니다. 저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저의 죄를 진단하면서 회개의 길로 들어서려고 했습니다.

제일 먼저 회개하고 싶은 대상은 저의 내적 상태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의 불(3:2)이 타고 있는가? 모세는 80세에 꺼지지 않은 불을 보았습니다. 그 불이 흔들리지 않은 소명을 이루게 했는데, 나의 마음속에도 그 소망의 불이 있는가? 두 번째는 그 소망의 불이 타서 믿음의 불이 되어 불의 혀같이 갈라지듯 내 입술로 믿음의 고백을 하고 있는가?(2:3) 세 번째는 그 불이 손발에 붙어서 사랑의 마음으로 그 하나님 나라를 실천하열매(잠언31;31)를 맺고 있는가?

 

 

1) 주기도문, 사도신경, 십계명

첫 번째 부분의 해답은 주기도문입니다. 내가 주기도문을 암송할 때, 정작 내 마음속에 하나님 나라를 이룩하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이 있는가? 두 번째의 해답은 사도신경(credo)으로 나는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면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봅니다. 나의 입술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자 하는 믿음의 거룩한 불을 뿜으면서 고백하고 있는가? 세 번째는 십계명(10C)을 암송할 때,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마음의 불이 입술로 전달되고 그 입술로 전달된 믿음의 불이 손발로 전달되어 하나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실천하여 열매를 맺고 있는가? 출애굽기(19:5-6) 하나님 나라이 말씀을 지킬 때,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고,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된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런 마음이 마음속에 어느 정도 불타서 열매 맺고 있는지? 그래서 회개의 열매(3:8)를 맺지 않으면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버린다고 말씀하셨는, 나의 마음속에 빨리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하겠다고 생각하면서 성경 속에서 회개의 길을 찾았습니다.

 

2) 하나님나라의 요건: , 주권, 백성

하나님 나라는 땅, 주권, 백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는 창세기에서 룻기까지 땅(제사장)에 대하여, 사무엘상에서 열왕기하 즉 시드기야 왕까지 복음을 전한 선지서에서는 주권()에 대하여,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는 역대상하에서부터 구약의 마지막 말라기(선지자)까지는 백성을 훈련하는 측면에서 회개의 길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신약은 4복음서와 바울의 1-5차전도 여행 그리고 사도후기 시대와 요한계시록을 보면서, 저는 회개의 내용과 우리가 마음의 불을 태울 길을 찾아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을 주시면서 창세기에서는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12:1-2)’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기(출애굽기)에서 절대 주권을 가진 신랑(하나님)과 결혼서약을 하고 천국의 열쇠를 받으라고 길을 제시(19:5-6)했습니다. 그리고 열쇠를 받은 이후 레위기에서는 친밀감(29:34)을 갖고 신혼여행(민수기: 2:2)을 가도록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하여 사랑을 나누는 훈련을 반복적으로 연습(17:18-20)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재미있고도 행복하게(1:3,5,8) 세상을 정복하며 살도록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이 길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원수를 만나 가난, 질병, 전쟁, 마귀의 포로가 될 것이니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는 정신 바짝 차리고 길을 잃지 말라 당부(레위기26, 신명기28)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랑의 언약을 잊어버린 채 배신과 방황을 거듭 반복했습니다. 13번의 배신과 함께 13번의 포로인생이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사사들(옷니엘, 에훗, 삼갈, 드보라, 기드온, 아비멜렉, 돌라, 야일, 입다, 입산, 엘론, 압돈, 삼손. 사사기1-16)을 통하여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래도 배신의 원인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어머니(17), 지도자(18), 제사장(19)이 자녀들과 백성들을 교육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대목에서 회개의 부분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래도 깨닫지 못한 그들은 전쟁(20)에서 한 지파가 몰살될 위기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를 명심하여 가슴에 새기지 않고 자기 소견대로(21:25) 살아서 초래된 결과입니다.

 

 

3)하나님의 구원 계획

이때 하나님은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한 가지 이벤트(사건)를 기획하셨습니다. 그것은 이방인을 통하여 내 골육을 시기하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11:14)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총회에 10대까지 들어갈 수 없는(23:3) 모압의 자손 중 남편과 시아버지를 잃은 룻을 통하여 메시아께서 오실 땅, 베들레헴을 바라보면서 메시를 바라보게 했습니다.(룻기)

하지만 그 땅에 대한 주인의식이 없이 방황하는 신부되는 우리들의 모습을 안타까이 여기신 우리 주님은 신앙의 텍스트 모델(삼상)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마음에 () 사람으로 다윗을 택했는데, 주님이 보시기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사람(13:22)으로 확신하셨습니다. 그는 왕이 되자마자 하나님께 믿음을 보여 드렸습니다. 1) 예루살렘을 정하여(삼하5:7) 하나님이 계실 곳을 확립(43:7)했습니다. 2) 법궤를 모셔(삼하6:17) 왔습니다. 3) 때가 되었을 때 제사장을 세웠습니다.(대상29:22)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딱 맞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는 옮기지 않도록 한 곳을 정하 그를 심고, 그들을 해하지 못하게 할 것이,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삼하7:10,16).” 약속하셨습니다. 이를 성전 계약이라고 합니다. 지속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엄청난 특혜입니다.

 

21세기의 관심사는 단연 LOHAS(life of healthy and sustainability)입니다. 모든 식품이나 유명상품들이 너나 할 것 없이 LOHAS 인증을 받기 원할 만큼, 동시대인들의 소원은 건강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건강한 삶을 지속하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 변합니다. 사람도, 인심도, 환경도 모든 것이 다 변합니다. 이렇게 변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고 지속가능한 삶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라고 소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속가능sustainability이 아닌, 영원토록 망하지 않고 왕위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원한 생명 즉 Eternal life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40:6~8)”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런 변화무쌍한 세상에 살면서 영원한 진리, 영생을 알게 하시고, 영원히 왕위가 끊어지지 않게 해주시겠다니, 이보다 더 큰 축복의 약속이 어디 있겠습니까?

 

4)인간의 범죄와 하나님의 징계

그런데 아쉬운 것은 다윗은 이 언약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복정치( 8), 복지정치(9), 장례 정치로 바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전투 중 휴식 시간에 다윗은 성범죄의 덫에 걸려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11). 곧이어 회개(12)를 하긴 했으나, 얕은 수준의 회개에서 그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반복하여 마음 판에 새기기 않으니, 바쁜 왕정의 시간표 속에 삶의 우선순위를 잃어버리고 자기 소견대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다윗은 자녀들의 근친상간과 압살롬의 복수(13), 압살롬의 흉계(14)와 반역(15), 시므이의 저주(16), 부하들의 계략(후새와 아이도벨/17), 압살롬의 죽음(18) 등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이후로도 다윗에게는 고통스런 비극이 멈추지 않고 계속 따라 다녔습니다. 그럼에도 깊은 회개를 하지 않고 자기 소견대로 살 때, 하나님은 4가지 징벌의 몽둥이를 사용하여 깨우침을 주셨습니다.

징계의 4가지 요소 중에서 3가지 즉 3년 동안 가난, 3개월 동안 전쟁과 포로, 3일 동안 질병 이 세 가지 중의 한 가지를 택하여 자발적으로 벌을 받으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다윗은 보통 우리 생각처럼 가장 작은 대가를 지불하는 3일 동안의 질병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이 단에서 브엘세바 까지 3일 동안 쉴 새 없이 계속 죽어갔습니다. 70,000명이 죽었습니다. 다윗은 마음 고통이 심하여 회개기도를 드렸습니다. 자신은 백성의 죽음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향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삼하24:17)”

 

기도를 받으신 하나님은 갓 선지자를 통하여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도록 알려 주셨습니다. 이 때 다윗에게 깨달음이 왔습니다, 예배드릴 땅을 사서 성전을 짓겠다고 말했을 때, 하나님이 주신 약속(삼하7:12-16)이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국정을 챙기는데 바빠서 그만 까맣게 약속을 잊어버린 채 큰 죄의 늪에 빠졌던 것입니다.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17:18-20).”

이 말씀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읽지 않으니 그 마음의 빈 공간에 마귀가 들어와 죄의 길로 몰아갔습니다. 이런 깨달음이 왔을 때, 다윗은 정신이 바짝 들어서 아라우나 타작마당과 소를 정식 가격인 은 50세겔의 값을 주고 사서 그 땅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는 장차 후손이 성전 지을 땅입니다. 이 때 재앙이 그쳤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삼하24:24~25)”

 

5)회개기도와 하나님의 축복

그의 19명의 아들들 중에 다윗을 통한 하나님의 언약을 아는 아들이 솔로몬(왕상8:25)이었습니다. 그는 19명의 아들들 중에서 10번째의 아들이지만 아버지의 정통성을 이어받는 유일한 계승자가 되었습니다. 이에 더하여 그에게는 체력(욥기), 지력(시편), 잠언(경제력), 인력(전도서), 하나님의 능력(아가서)을 최고로 부여하였습니다.

 

열왕기 상하에서는 그 축복의 대열을 두 지파를 통하여 선의의 경쟁으로 계승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한 지파는 명분을 좋아하는 요셉, 다른 한 지파는 실속을 좋아하는 유다지파(대상5:2)입니다.

요셉지파에서는 19명의 후손이 왕의 대를 이어갑니다. 여로보암, 나답, 바아사, 엘라, 시므리, 오므리, 아합, 아하시야, 여호람, 예후, 여호아하스, 요아스, 여로보암2, 스갸랴, 살룸, 므나헴, 브가히야, 베가, 호세아 왕입니다, 그런가 하면 남왕국은 르호보암, 아비얌, 아사, 여호사밧, 여호람, 아하시야, 아달랴, 요아스, 아마샤,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므낫세, 아몬, 요시야,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로서 19명의 왕에 무자격자 1(아달랴)이 더 붙어서 20명이 왕의 자리를 계승했습니다.

 

6)북이스라엘의 멸망과 남유다의 위기

여기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북쪽 왕들은 다윗과 관계가 없다고 선언(왕상 12:16)한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그의 왕위를 영원히 존속시켜주시겠다는 약속을 일방적으로 깨버린 (삼하7;12-16)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법칙을 무시하고 사사시대처럼 자기 소견대로 살았습니다. 말씀을 모르므로 같은 과정을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이런 무지함은 가난, 질병, 전쟁 포로의 시간표대로 자체 쿠데타를 9번이나 일으켜 국력을 다 소진하게 함으로 앗수르의 공격을 받았을 때 역사의 지도 속에서 없어졌습니다.

그런가 하면 남쪽의 왕들은 다윗의 전승을 이어 받기 위해 애를 쓰던 사람들입니다. 르호보암, 아비얌, 아사, 여호사밧, 여호람, 아하시야, 아달랴, 요아스, 아먀사,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므낫세, 아몬, 요시야,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입니다. 19명 더하기 1명입니다.

그중에서도 아사, 여호사밧, 요아스, 아마샤, 웃시야, 요담, 히스기야, 요시야는 좋은 왕으로써, 다윗의 전승을 이어가기 위해 애를 씀으로 후대를 위하여 징검다리를 놓은 왕입니다. 이들이 있었기에 하나님은 남 왕국을 끝까지 챙기셨습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남쪽 유다의 왕 중에 왕이 되지 않았어야 할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원래 유다의 왕은 유대인, 남자 그리고 30세라야 합니다. 여자이기에 이 범위에서 벗어난 사람 아달랴가 남쪽 나라 여호람 왕에게 시집 왔는데, 왕이 죽자 그는 모든 유다 왕손을 다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이 때 요엘 선지자는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이러다가는 왕의 대가 끊어집니다. 그러면 영원히 왕의 대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삼하7:16)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지켜지지 못하게 되고 본래 의도와는 달리 하나님이 거짓말하신 것이 되는데,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주의 종으로서 요엘은 하나님이 거짓말하시도록 방관하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왕의 대가 끊어지지 않게 빨리 대를 이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든지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을 세워 왕의 대를 이어가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요엘 선지자는 외쳤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들은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2;28)”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았더니 왕의 후손 중에서 금방 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제사장 여호야다는 그 아이를 성전으로 급히 안고 가게 하여 숨겨서 키웠습니다. 아이가 커갈수록 목소리가 커가니 이제는 숨겨서 키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의 나이 7세 때 여호야다는 거사를 행하여 이 아이를 왕위에 등극시킵니다. 그 왕이 이름하여 요아스 왕입니다.

그 다음부터 왕 중에서 30세에 왕이 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마샤 25, 웃시야 16, 요담 25, 아하스 20, 히스기야 25, 므낫세 12, 아몬 22, 요시야 8, 여호와아스 23, 여호야김 25, 여호야긴 18, 시드기야 21세입니다. 예수님에 이르러서야 30세에 왕이 되셨습니다. 이는 법을 지킬 수 없을 정도로 난세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7)선지자의 등장과 하나님의 메시지

이제는 청소를 해야 합니다. 왕의 대를 끊어 버리려한 마귀의 세력의 앞잡이 아달랴를 제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뿌리인 아합과 아달랴의 어머니 이세벨을 청소해야 합니다. 이에 시원하게 그의 뿌리를 청소해 준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바로 예후입니다. 그는 엘리야로부터 기름부음 받은 자(왕상19:16)입니다. 그가 나서서 그들의 뿌리를 다 제거하자, 하나님은 너무 기뻐서 예후의 4대 왕 때 물질적으로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여로보암 왕 때는 초기 솔로몬 왕 때만큼 경제적인 축복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축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신 축복은 오력을 얻어야 축복입니다. 영력, 지력, 인력, 경제력, 체력. 이 다섯 가지가 골고루 있어야 축복입니다. 여로보암 시대에 경제적으로는 최상의 축복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한 그들은 오히려 영적 위기를 당한 것입니다. 이를 먼저 인지한 사람이 아모스 선지자입니다.

 

아모스는 여로보암 시대에 뽕나무를 키우고, 양떼를 지키면서 짐을 운반하는 자입니다. 그가 짐을 운반하는 과정에서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 심각한 상황에 놓인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법이 지켜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본 것입니다. 부자는 여름 궁과 겨울 궁이 따로 있을 정도로 부유합니다. 반면에 가난한 계층에선 고무신 한 켤레 값에 으로 사람이 매매되는 실정입니다. 한 마디로 정의가 없습니다. 이에 아모스는 사마리아 성읍을 다니면서 부지런히 상황을 파악해 보았습니다.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5:24).”

이 세대는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요,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8:11).”

 

그런가 하면 호세아가 이스라엘 생활상을 살펴보니 가정이 망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가정을 꾸미게 했습니다. 첫째 아들을 이스르엘(1:4)이라 이름하여 망할 자식이라 불렀습니다. 둘째 딸은 로루하마 즉 사랑받지 못한 딸이라 지었습니다(1:6). 셋째 아들은 로암미 즉 내 백성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정이 망가졌습니다(1:9). 이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오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4:6).”

 

국가망하게 되었습니다. 미래를 내다보면서 전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는 미래가 없습니다. 니느웨에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시대를 살릴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할 때,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12:39)고 말했습니다. 결국 요나는 니느웨에 복음을 전하는 사명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로 인해 요나가 복음을 전한 때(주전 753)로부터 31년 후인 주전 722, 유다는 앗수르에 의해 완전히 멸망당하고 맙니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회개하고 말씀을 전할 사명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있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을 정복한 앗수르는 그 여세를 몰아서 남쪽 유다를 삼키려고 으르렁거렸습니다. 이 사실을 먼저 파악한 선지자는 미가입니다. 미가는 사마리아에 취직하기 위해 거주했는데, 사마리아가 앗수르 군대에게 파멸 당하자 고향인 농촌 모레셋 지방으로 피신했습니다, 앗수르 군대가 그곳도 다 약탈했습니다. 미가 선지자는 급히 예루살렘으로 몸을 피했습니다. 예루살렘은 이런 소식을 전혀 모른 채 영적인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미가는 메시야 오실 땅 베들레헴을 바라보라’(미가 5:2)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곧 많은 이방사람들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도로 우리를 가르치실 것이니라. 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미가4:2).”

이 말씀을 받아서 그대로 전한 사람이 이사야입니다. 이사야서 본문(2:2~3)에는 위의 말씀(미가4:2)을 그대로 전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메시아가 오십니다(7:14).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계속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계속 성경을 읽으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성경 읽는 습관이 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자들에게 성경을 읽으라고 했더니, 뜻을 몰라서 못 읽겠다고 하고,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성경을 읽으라고 했더니 글자를 몰라서 못 읽겠다(29:1~12)고 합니다. 그 원인은 성경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사야서 56(10~11)에서는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여 누워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 목적은 출애굽기(19:5~6) 말씀대로 제사장 나라를 만들기 위한 하나님이 계획이 있었는데, 그 약속을 저버리고 백성이 읽지 않은 이유를 가르쳐 주어야 할 엄마(17), 지도자(18), 제사장(19)인데, 그중에서도 목자들이 무지하여 벙어리처럼 경고의 메시지를 외치지 않으니, 어려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가난, 질병, 전쟁, 포로의 과정에서 망한다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래도 깨닫지 못했던 히스기야 왕은 몸으로 그 사실을 체험합니다. 앗수르 군대가 쳐들어와서 은 300달란트, 30달란트를 조공으로 바치게 합니다. 이에 히스기야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여 요구대로 바쳤습니다. 그랬더니 유다 나라가 부자인 줄 알고 46개 성읍을 정복해버렸습니다. 결국 나중에는 예루살렘만 마치 추수후의 원두막처럼 덩그러니 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마저도 삼키려고 협박했습니다. 이때서야 히스기야는 성전에 올라가서 글을 펴놓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엘테게 전투에서 앗수르 군대 185,000명을 조용히 처리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앗수르 왕이 죽고 그의 아들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쯤 되면 히스기야 왕이 정신을 차려서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서 말씀 위에 나라를 말씀위에 견고하게 세울 법 하건만, 생활이 분주하니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더 센 경고를 주었습니다. “너는 집에 유언하라. 너는 죽고 살지 못하리라(38:1).” 병으로 죽는다는 경고입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히스기야는 재임 초기에 예배를 회복하고, 절기예배를 회복하고, 우상을 제거하면서 다윗의 정통성을 살리기 위해 무척 애를 썼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 속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3년의 목숨을 연장해주기로 약속했습니다. 3년의 5배인 15년으로 연장했습니다. 그러나 회복된 후 그는 하나님에게 감사하지 않았고(대하32:25), 기도할 때의 서원기도 내용 또한 잊어버리고 므로닥 발라단 왕에게 자랑하기에 바빴습니다. 하나님은 깨닫지 못하는 그에게 앞으로 전쟁이 일어나서 자녀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갈 것이고, 그들 중 몇은 환관이 될 것(39:6-7)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언약의 말씀을 기억할 기회를 준 것인데, 이를 놓치고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 내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이다(39:8)” 라고 응답하여 긍휼의 기회를 놓쳤습니다. 이는 히스기야의 큰 실수였습니다. 그에게는 평생 기도제목이 없었기에 이런 실수를 했는지 모릅니다.

때마침 그의 아들 므낫세 왕 때에는 앗수르가 가장 세력이 강한 때였습니다. 에살핫돈 때는 앗수르가 아프리카의 강대국인 애굽의 수도 멤피스를 정복(주전 671)했고, 이어서 앗수르 바니팔 때는 애굽의 제2의 수도 테베를 정복(주전663)했습니다. 앗수르는 세계 최강의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북쪽의 앗수르가 남쪽의 애굽을 수차례 정복할 때에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12세에 왕으로 등극했습니다. 물론 그는 앗수르의 등살에 많은 압박을 받으며 고난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다시 한 번 긍휼을 베푸십니다. 나훔 예언자를 통하여 앗수르는 망할 것이다(2:10).’라고 선포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숨어서 묵묵히 말씀에 몰입하는 자들에게 스바냐를 통하여 기죽지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신다.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다(3;16).’ 라고 전했습니다.

그 말씀은 적절한 때에 이루어졌습니다. 앗수르바니팔이 죽자, 아들 신사르이스쿤과 앗수르 에틸일라니 두 아들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 앗수르 국력을 크게 손상시켰습니다. 이 때 출현한 자가 바벨론의 나보폴라살이었습니다(주전627). 앗수르의 왕자 두 형제가 싸우는 사이 바벨론이 급성장했습니다. 이에 반해 앗수르는 주변 국가로부터 침략을 받아 급속하게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전 614년에는 앗수르(도시이름)가 망했고, 주전 612년에는 니느웨가 망했습니다. 이어서 주전 610년에는 하란으로 앗수르의 수도를 옮겨야 했습니다. 급기야는 주전 609년에 갈그미스 전투에서 앗수르와 바벨론이 큰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앗수르는 위기를 느껴서 애굽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애굽은 그때까지는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가 바로 느고가 등장함으로 기지개를 켜고 있었습니다. 앗수르의 도움 요청이 있자, 기회다 싶은 애굽은 서둘러 유브라데스강 유역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그 길목에 유다 나라가 있습니다. 유다 나라에 통과 협조 요청을 했으나, 요시아 왕은 거부했습니다. 나중에는 애굽이 유다 땅 므깃도를 지나가는 것을 막다가 그만 애굽의 군대에게 패했습니다.

결국 바로 느고는 싸워보지도 않고 거저먹기로 유대지역을 차지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유대나라를 점령하고 유대 왕으로 여호아하스를 임명했습니다. 이때 형인 여호야김(25)이 가만히 보니, 자기를 무시하고 동생인 여호아하스(23))가 왕이 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바로 느고에게 자기를 왕으로 세워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물론 은 100달란트와 금 1달란트를 바치며 왕의 명령에 충성할 것을 다짐했지요. 애굽 왕은 여호아하스를 애굽에 데려갔습니다. 여호야김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국민들에게 강제로 세금을 거두게 되니 국가가 어수선했습니다.

 

이 때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 짐이니이다(1;3-4).”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또한 어려운 환란에 구경꾼처럼 방관하면서 비웃는 사람들에게는 오바댜(1:10)를 통하여 구경꾼은 망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갈가미스 전투(주전609)에서부터 이스라엘이 망할 때까지(주전 586) 줄기차게 23년 동안(25:3) 예언의 말씀을 통하여 바벨론의 끓는 가마가 밀려온다고 외쳤습니다.

 

8)새 언약과 지시- “길표(roadmap)를 만들어라.”

하나님을 떠나면 가난, 질병, 전쟁, 포로의 4가지 단계의 고통(29:18, 15:2)이 옵니다. 지속적으로 외쳤습니다. 그래도 전혀 듣지 아니하고 오히려 예레미야를 감옥의 흙구덩이에 던져 넣었습니다. 예레미야의 마음은 타들어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당신의 계획을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포기 하지 않고 좋은 무화과나무 열매를 만들겠다(24:5)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계획을 지시하셨습니다. “ 너의 길표(Roadmap)를 만들고 너의 푯말을 세워서 전념하라고 말씀(31:21)하셨습니다. 계속해서 주님은 중대한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제부터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는(31:31). 지금까지는 돌판에 쓴 언약을 주었지만 그것을 깨뜨렸다. 앞으로는 이 언약을 그들의 마음 판에 기록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31:33)이다. 그리고 이 약속을 마음속에 새기어 지키는 자에게는 내가 낮에는 하늘의 해로, 밤에는 달, 그리고 별, 해달별이 없는 혼란할 때는 파도소리가 나의 약속을 보증해 줄 것(31:35)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유다백성들은 이 말씀 후에 바벨론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가족도, 이웃도, 학교도, 성전도 모두 그들 주변에 없습니다. 나를 보장해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이 성경책을 나의 길표(로드맵)로 삼고 마음 판에 말씀을 늘 새기면 하나님이 내 인생을 책임지겠다고 말씀하시면서 ···,파도로 보증을 세웠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제 나이 50에 성전 건축을 계획하는 중에 하나님은 이 말씀으로 나의 가슴을 때렸습니다. 나는 한동안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 가정이 망가지고, 국가가 망가지고, 교회가 망가지고, 모든 것이 다 망가져도 마음 판에 말씀만 새기면 그게 로드맵이 되어 하나님이 나의 인생 전체를 책임지신다. 이제부터 나는 2의 인생을 산다. 평생 로드맵바이블을 들고 사람들에게 길표(Roadmap)를 만들어 주면서 살리라.’고 다짐하면서 예레미야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곤 했습니다.

예언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좋은 무화과 열매를 만들고자 결심하셨습니다. 3년이면 좋은 무화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3년 동안 제자 훈련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제자들에게 맡기시는 시범을 보인 것이지요. 3년 혹은 3년 반을 두 번 또는 이를 10번 반복하면 틀림없이 좋은 무화과 열매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50년 혹은 넉넉잡고 70년을 이스라엘 백성을 유학을 통하여 특수 교육하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인생이 거듭나려면 모라토리움(moratorium) 기간이 필요합니다. 모라토리움이란 경제 용어로서 사전에 의하면, 국가가 전쟁지진경제공황화폐개혁 등 한 국가 전체 또는 어느 특정 지역에서 긴급사태가 생겼을 때, 국가권력을 발동해 일정 기간 동안 금전적인 채무이행을 연장하는 것을 말합니다.

인생 살아가는 동안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위기를 당할 때 잠시 사명을 유보하는 기간이 필요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바벨론의 생활은 신앙의 모라토리움 기간입니다. 그동안 체력과 지력, 경제력과 인력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장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세울 준비를 하는 시간입니다. 특히 신앙으로 무장한 인적 자원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9)믿음 & 신앙의 정통성 세우기

모라토리움 기간 중에 제일 먼저 배워야 할 내용은 신앙의 정통성을 세우는 것입니다. 믿음의 뿌리를 찾아야 합니다. 나의 믿음의 뿌리의 시작은 어디서 찾아야 합니까? 그것을 말해 주는 책이 바로 역대상하입니다.

역대상은 그 믿음의 뿌리는 다윗(삼하7:12-16)에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모세, 아브라함 더 올라가면 아담에 이르러 뿌리를 찾습니다.

역대하는 다윗부터 시작하여 왕의 대가 끊어진 시드기야까지 신앙의 정통성을 확고하게 세워서 다시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겠다고 결심합니다. 하나님이 다윗과 약속할 때, 왕의 대가 영원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삼하7:12-16) 이렇게 왕의 대가 끊어지고 포로가 되어 1,600km 되는 길을 4개월에 걸쳐 걸어가서 포로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 어디 있습니까?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반성문을 쓰고 시온을 기억하면서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신앙의 정통성을 세워야 합니다. 3년이든, 7년이든, 10년이든 아니 70년이 걸려도 내가 꼭 해야 할 것은 우리 공동체에 신앙의 정통성을 세우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합니다. 자기연민에 빠지거나 나약한 마음을 가지면, 금방 마음이 무너집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지금 나라가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고, 모든 게 무너졌는데, 자기연민에 빠져 흐느적거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 마음을 강하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합니다.’ 이것을 3글자로 무엇이라고 할까요? 에스겔입니다.

 

에스겔은 하나님! 마음을 강하게 하옵소서,’ 그런 뜻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난, 질병, 전쟁, 포로 이 4가지 사건이 또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는 에스겔서에서 누누이 강조하는(14:21, 5:2 ) 내용이기도 하지요. 듣던 지 안 듣던 지 계속 말해야 합니다. 너무 반복하여 듣기 싫다 해도 계속 말합니다(3:11). 결국에는 그 경고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 소견대로 살다가 가난과 질병과 전쟁에 시달리다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서 사랑하는 아내(이스라엘 백성)가 죽게 됩니다. (하나님의 1인칭 관점에서) 나의 인생의 절반인 아내가 죽은 것(24:16)입니다. 그 험악한 세상을 살면서도 아내의 사랑으로 인하여 오늘까지 버티고 살았는데 이제 아내까지 죽었으니 무슨 낙으로 살아요?

어떤 사람은 새 장가 들면 된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나는 너무너무 지난 세월이 야속해요. 우리 아내 고생시킨 사람, 우리 아내에게 억울하게 말한 사람, 다 찾아내서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나는 우리 아내가 최고로 현명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최현명인데 그런데 누가 우리 아내를 보고 미련하다고 욕하고 괴롭히는 거야. 그 사람들 다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래서 아내를 괴롭힌 사람들의 명단을 다 적어 보았어요. 그게 25-32장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두 8명이 있어요. 그 사람들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 사람 명단 공개해요.

0 0 0 0 0 0 000 0이 있습니다. 즉 모압, 암몬, 세일, 에돔, 두로, 시돈, 블레셋, 애굽의 나라를 처단하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변의 8개의 나라를 모두 처단하고 나니, 마음 한 구석에 미안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또한 잘해 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파수꾼이 되겠다(33)고 결심합니다. 또한 착한 목자가 되고(34), 구경꾼이 되지 않겠다고(35) 다짐합니다. 더 나아가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어 새 영을 통한 거듭난 인생이 되겠다(36)고 결심합니다.

이런 결심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풍성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합니다. 이 때 하나님은 37장에서 에스겔에게 아내를 살려보자고 하십니다. 그동안 죽어서 버려 둔 아내의 뼈를 모아서 거기에 힘줄, 신경 줄, 뼈 마디마디를 잘 가져다 붙여서 온전한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겉으로 피부를 붙여서 사람의 모양을 만들어 생기를 불어 넣었습니다. 그랬더니 사람이 되어 큰 군대를 이루어 어느 누구 부럽지 않은 아내가 되었습니다.

이 때 아내를 괴롭혔던 사람들이 다시 군대를 만들어 싸우러 왔습니다. 그곳이 마곡전투입니다. 이곳에서 승리한 사람이 마지막에 승리하는 것입니다 이곳의 전투 승리를 위해 준비된 교회가 있습니다. 여러분 아실 지 모르겠네요. 제가 시무하는 바로 우리교회입니다. (웃자고 한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집을 짓기로 작정했습니다. 하나님의 발이 있을 곳, 앉을 자리, 이름이 영원히 있을 곳을 예루살렘에 준비하기로 작정(43:7)하셨습니다. 이것은 영원한 기념비적인 작품을 만들겠다는 결심의 표현입니다. 포로로 잡혀가기 전에 앞으로 70년 후에(25:12) 성전을 지을 것이라는 결심을 선지자들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이 비밀을 깨달은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3년 동안 맛있는 것, 재미있는 것을 보류하고 말씀공부에 전념(1:8)했습니다. 정확하게 3년 공부했더니 총리자리에 앉혀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비전을 보여 주셨습니다. 앞으로 세상은 금메달 나라, 은메달 나라, 동메달 나라, 철메달 나라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나라가 다 망합니다. 앞으로 영원히 세워질 나라는 돌메달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히 망하지 않는 한 나라를 세우시는데, 그게 바로 사람들의 손때가 묻지 아니한 돌로 지은 나라(2;44-45)입니다.

그 돌이 무엇인가 했더니 예수님께서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16:18). 음부의 권세가 너를 이기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반석은 신앙고백입니다. 주님은 세상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신앙고백 위에 세워지는 교회를 바라보셨습니다. 600년 후에 교회가 세워져서 영적으로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놀라운 역사를 재현하시겠다는 비전을 성경을 읽는 가운데 다니엘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에스라는 이를 깨닫고 결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더라(에스라7:10).” 그래서 에스라서가 정경으로 결정됩니다. 우리가 외경이라고 하는 모든 내용은 에스라 이후에 기록된 것이라고 말하고 오직 정경은 에스라 이전에 기록한 성경을 말합니다. 이것이 결심기도의 응답입니다.

 

에스더는 결사기도를 드렸습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스더4;16).”

 

느헤미야는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1:6-7).”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응답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1:8).”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2:8).”

그 이야기를 듣고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함께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동을 받아서 성전 짓기로 결심하고 팔을 걷어 붙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다리오 왕이 폐르샤의 새 왕으로 등극한 후 왕궁의 진용을 갖추기 위해 인재등용을 위한 향연에서 스룹바벨을 만납니다. 그때 스룹바벨이 장원에 합격했는데, 알고 보니 어린 시절의 다리오 왕과 스룹바벨은 소꿉친구였습니다. 어릴 때 소꿉장난하면서 약속했던 말이 다리오 소년은 왕이 되는 것이 꿈이었고, 스룹바벨은 성전을 짓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왕과 성전을 짓기 위한 총독이 되어 만났습니다. 다리오 왕이 50달란트를 성전 건축후원금으로 지원하여 줌으로 성전을 즐겁게 지어 완공했습니다.

이에 감사하면서 스가랴는 이제 메시야 오실 때를 바라보면서 새 싹을 키우고(3;8), 한 번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준비하여 메시야 오실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은 70년의 인생 모로토리움(moratorium) 기간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그 성전에서 말씀운동을 하면서 새싹을 키울 준비를 다 다시키셨습니다. 이에 준비된 사람을 통하여, 19:5-6, 삼하7:12-16을 성취하기 위하여 지속가능한 삶을 살도록 여건을 다 마련한 것입니다.

 

말라기는 이제 메시야 오실 날을 기다리는 마지막 문서입니다. 중요한 것은 메시아가 오시기를 바라며 마지막으로 3가지를 당부합니다.

1) 제사장들의 입술을 통하여 지식을 구하여야 하겠고 사람들은 제사장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여야 할 것입니다(2:5-7).

2) 가정에서는 경건한 아내를 통하여 경건한 자손을 키워야 할 것입니다.(2:15)

3) 사회에서는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아오도록 회개의 기도를 드리면서 메시아 오시기를 간절히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에서 예수님이 하시고자 하는 말씀입니다.

 

10)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눈(God’s sight)이 열리다

이렇게 말씀을 읽어갈 때, 하나님은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눈이 열립니다. 이것을 hindsight라고 합니다. 이는 과거의 삶속에서 나를 괴롭히는 가난 · 질병 · 전쟁 · 마귀의 포로가 될 수밖에 없는 문제를 해결하는 눈이 열립니다. 이는 제사장적인 기능입니다.

두 번째는 insightoutsight가 열립니다. 세상을 안팎으로 보는 눈을 열어 주십니다. 이는 통찰력입니다. 이를 통하여 왕으로서 체력, 지력, 경제력, 인력, 하나님의 능력을 획득할 수 있는 길이 보입니다.

세 번째는 미래를 볼 수 있는 (foresight) 열립니다. 미래를 보는 눈이 열려서 미래의 방향과 목표가 열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선지자적 기능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연결하면 God’s sight가 열립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립니다. 이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오심을 볼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말씀으로 당신을 알려주시던 분이 이제는 신약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땅에 오셨습니다. 이를 구체화한 사건이 바로 인카네이션(incarnation)입니다. 이는 초림 예수를 말합니다.

성경을 통하여 위의 삶을 반복하면서 주님을 기다리고 기다리는 자에게 우리 주님 오십니다. 이제 신약을 통하여 생명의 길을 찾아봅니다.

 

 

3. 로드맵 바이블이 열어놓은 생명의 길

 

하나님의 나라라는 관점에서 예수님을 살펴보면, 마태복음은 유대 땅 베들레헴(2:2)으로서 땅을 말하며, 마가복음은 주권의 시작(1:1)으로, 누가복음은 잃어버린 한 사람도 소홀하지 않고 찾는 관점(15;4-7)으로 하늘나라의 땅, 주권, 백성에 대하여 3대요소를 다스리는 측면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나가는 것의 시범을 보이십니다. 이는 지극히 인간적인 측면이라는 공통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기에 공관복음이라고 합니다. 이를 vere homo로서 참인간으로서의 주님의 모습을 알려 줍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은 하나님(10;30)으로서 vere deus라고 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그냥 읽으면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요한복음의 진정한 뜻을 알고 읽으려면, 예수님의 IDpassword를 알아야 합니다.

 

1) 예수님의 ID : ‘······

예수님은 항상 무엇은 무엇이다라는 식의 은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인류 역사 속에서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속성을 알려준 사람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뿐이십니다. 이것을 신학교에서 에고 에이미(나는 ~~이다)로 배웠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ID는 무엇인가? 나는 ······다 라는 말씀입니다.

1)(나는 생명의 떡(6:48)이다.) - 이는 민생고 해결자이십니다.

2)(나는 세상의 빛(8:12)이다.) - 이는 어둠의 해결자이십니다.

3)(나는 양의 문(10:7)이다.) - 이는 문제 있는 사람들의 해답입니다.

4)(나는 선한 목자(10;11).) - 그는 나의 보호자입니다

5)(나는 부활(11:25)이다.) - 그는 나의 죽음의 해결자입니다.

6)(나는 길(14:6)이다.) - 그는 방황하는 자들의 해결자이십니다.

7)(나는 포도나무(15:1).) - 그는 열매 맺도록 하는 분이십니다.

이런 7가지 특성을 가진 예수님을 믿으면서 요한복음을 읽어야 본래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Password······입니다.

1): 로 포도주를 만든 사건으로 물질의 성분을 초월함으로써 인간의 삶의 질 초월(2)

2): 왕의 신하의 병을 고치신 사건으로 공간을 초월하신 분(2)

3):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분으로 시간을 초월(5)

4): 오병이어로 5,000명 먹이심으로 양을 초월(6)

5): 물위를 걸어가심으로써 자연 법칙을 초월하시는 분(6)

6):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고치심으로 인간의 운명을 초월하시는 분(9:1)

7):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으로써 죽음을 초월하신 (11)

 

2)신약의 핵심, 십자가와 부활

이렇듯 예수님은 인간, 시간, 공간과 양과 질, 자연법칙, 인간의 운명과 죽음의 문제를 다 해결하실 수 있는 분으로 나는 이런 분이다.’ 라고 요한복음에서는 자신을 계시하고 계십니다.

신구약의 핵심은 십자가에서 이 모든 것을 해결하셨다는 것입니다. 21:23절에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받은 자다고 했는데, 예수님이 세상의 모든 가난, 질병, 전쟁, 마귀의 포로의 생활에서 당하는 모든 문제를 십자가에서 해결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모든 사역을 다 이루었습니다(19:30). 그 증거로 부활하심으로 첫 열매(고전15:20)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은 지금까지 보여준 성경의 내용을 제자들을 통해서 현장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뤄 가십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열매를 맺어가면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신 것이죠.

 

마지막으로 우리 성도들이 재림하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종말론적 삶을 사는 내용이 사도행전부터 계시록까지의 이야기입니다.

먼저 사도행전을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1장은 하나님은 천국 사역의 책임요원 12명을 훈련하셨습니다. 12사람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거기에서 진용을 갖추었습니다. 본부는 예루살렘성전이요. 책임요원은 12제자입니다.

2장의 중요한 내용은 절기입니다. 절기는 시간의 좌표입니다. 절기 중심으로 하나님은 시간표를 움직이십니다. 4복음서에는 유월절 중심으로 세상이 움직입니다. 사도행전부터는 오순절입니다 오순절은 무엇인가. 오순절은 성경을 받은 날입니다. 다시 말하면 출애굽한 지 50일째 되는 날 구약에서는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지 50일째 되는 날에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의 오순절은 개념이 약간 다릅니다. 예전까지의 오순절은 시내산에서 받은 돌판에 기록한 법전을 기념하기 위해서 모였다면 이제는 그 말씀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성경은 성경자체이신 예수님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갖고 있는 성경을 예수님 중심으로 해석하려면 예수님의 하신 말씀이 생각나야 하고, 예수님 관점에서 해석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사건이 일어난 날입니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일은 성경을 읽지 않으면서도 성령 충만하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성령은 성경을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영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를 이해할 때 사역이 중심지로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대한 HQ(headquator)를 정해야 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 나라는 가나안땅입니다. ‘내가 지시하는 땅입니다. 그 본부가 예루살렘성전입니다. 여기에 나의 눈이 있고, 귀가 있고, 나의 발 둘 곳이 있고, 앉을 자리가 있고, 나의 이름이 영원히 있을 곳이라고 했습니다(43:7).

이렇게 하여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모이는 교회, 예루살렘 교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주신 말씀을 중심으로 성경을 이해하고 보니 하나님 나라가 이제는 모이는 교회에서 흩어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28:20).”의 확장 사역입니다. 주님의 제자로서 세상으로 나가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 성도의 사명이요 교회는 그 센터라는 것입니다. 이런 스케줄을 따라 전도하다보면 메시지가 확립됩니다. 그곳에 일꾼이 세워짐으로 교회가 세워지고,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고, 다니엘에게 주어진 비전이 이루어지면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거가 바로 예루살렘 본교회입니다.

 

3)복음전도의 전초기지, 안디옥

그러면 전도의 센터는 어디로 세울 것인가? 우리는 여기에서 안디옥이라는 곳의 개념을 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안디옥은 어디인가? 그 당시 전쟁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주전 853년에 오론테스 강변의 칼칼 전투에서 이스라엘의 아합 왕, 유다 여호사밧, 아람 벤하닷의 연합국가가 강대국 앗수르와 싸웠던 장소가 바로 안디옥입니다. 그 후 100년 동안 앗수르는 753년 살만에셀 5세 때까지 공격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입장에서 보면 안디옥 지역은 제국 국가와 싸워서 처음 이긴 장소로서 추억을 갖고 있는 곳입니다. 또한 안디옥은 예수님 당시에는 로마 사람들이 안디옥을 동방의 로마라는 이름을 붙일 만큼 탐내던 도시입니다. 잠시 역사를 더듬어보면, 예로부터 동양은 서양을 탐냈고, 서양은 동양을 탐냈습니다. 그러다가 서양의 알렉산더가 왕이 되면서 동서양을 선을 긋는 말마라 해협 그 밑의 다다넬스 해협을 건넜습니다. 동양의 왕 다리오 3세를 죽이면서 서양이 동양을 차지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그 때가 331(입소스)입니다. 그는 동서양의 모든 나라들을 정복할 야심으로 거칠게 정복전쟁을 전개했습니다. 많은 나라들을 정복하고 70개 도시를 정복했습니다. 그중에서 17개를 알렉산드리아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중에서 아프리카에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건설하고, 세계 중심의 거점도시로 만들었습니다.

알렉산더가 33살에 일찍 죽고 후계자가 없었습니다. 그의 신하 7명이 세력 다툼을 하는 중에 프톨레미가 강하여 알렉산드리아 중심으로 헬라의 문화를 이어갔습니다. 한편 유브라테스 강 중심으로 실류키드가 왕이 되어 두 세력이 약 200년 동안 헬라의 문화의 패권싸움을 했습니다. 그때 셀류키드는 도시를 점령하여 좋은 곳에는 항상 아버지 이름을 따서 안디옥이라이름을 붙였습니다. 그가 점령한 도시가 60개인데 그중에서 안디옥이라는 이름을 붙인 곳이 16군데입니다. 그중에서 제일 좋은 곳이 수리아 안디옥입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프톨레미 왕국과 안디옥왕국이 싸우는 중에 로마라는 서양의 작은 나라가 점점 커가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로마가 프톨레미 왕국을 정복하더니 주전 64년에는 안디옥을 차지했습니다. 로마는 안디옥을 동방의 로마라고 인정하고 애굽의 알렉산드리아 보다 중요한 도시로 인정했습니다. 이렇듯 중요한 전쟁의 HQ가 있는 곳인 안디옥에 복음의 전진기지의 본부를 세운 것입니다. 여기에서 바울의 그릇의 크기를 봅니다. 세계적인 전쟁이 벌어지는 곳이 돈이 있는 곳입니다

결국 전쟁은 돈입니다. 이런 논리가 팽배한 곳이기에 전쟁터에 나가면 항상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논리도 통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비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상은 전쟁을 통하여 황금을 얻고 그 황금으로 세상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십자가에 달려 모든 죄의 대가를 지불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정복하는 것이라는 소박한 믿음을 가지고 세계적인 싸움터 현장인 그곳을 본부로 삼아 세계 복음화의 깃발을 흔드는 것입니다. 이런 증거로 사도바울은 전도여행 때마다 그 결과를 예루살렘 교회에 보고했고, 개척된 전방교회로부터 후원금을 모아서 예루살렘 본 교회에 헌금했습니다.

 

4)바울사도의 성경연구와 전도여행

1차 전도여행을 갔습니다(13-15장의 이야기). 물론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에 17년간 성경을 예수그리스도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또 연구했습니다. 아라비아 사막에서 3, 나머지는 집에서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현장에 바나바와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를 거쳐서 갈라디아로 갔습니다.

감사한 것은 갈라디아 지역인 루스드라에서 유다의 열심당원들에 의해 돌에 맞아 죽을 뻔했을 때, 돌을 맞는 와중에 그는 눈빛이 초롱초롱한 디모데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다음 2차 전도여행 때는 그를 챙겼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 그의 대가로 사울을 발견했는데, 이번에는 사울이 돌에 맞아 위기를 당하면서 그 대가로 디모데를 발견한 것(딤후3:11)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그의 어머니 유니게와 그의 외할머니 로이스, 기도의 용사를 얻은 것도 굉장한 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도는 현장으로 나갈 때 복음의 큰 비밀을 누리는 것입니다.

현장에서 복음을 전할 때 메시지가 명쾌해야 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방해자들을 명쾌하게 설득하든지 감동시켜야하기 때문입니다. 1차전도 여행 때 처음으로 부딪힌 것인 유대교의 율법입니다. 함께 전도여행에 동참했던 마가는 사도바울이 율법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 때문에 루스드라에서 집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금수저이기 때문에 2,800미터가 넘는 트라우스 산맥을 넘으며 고생하는 것에 부담을 느껴서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라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마가는 율법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마가는 사도바울이 율법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했기에 도저히 수용할 수 없어서 집으로 돌아갔다고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저 역시 후자를 지원합니다(4:10-11).

 

이렇듯 1차 전도여행 중에 혼란에 빠지게 되자, 사도행전 15장에 보면 예루살렘에 와서 전도의 결과보고를 하는 중에 이런 애로 사항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기독교에 대한 확실한 메시지를 정해놓고 전도해야 하겠다는 사실을 예루살렘 1차 총회에 안건으로 내놓았습니다.

 

원래 유대인은 에스라 이후에 확고한 율법을 잘 지켰기에, 이스라엘 공동체가 세계의 그 많은 위협 속에서도 없어지지 않고 오늘까지 존재하도록 힘을 발휘한 것입니다. 그 중심은 이러합니다.

모세 5경에 보면, 창세기 3, 출애굽기 111, 레위기 247, 민수기 52, 신명기 200, 전체 613개의 조항이 있습니다. 이것을 둘로 나누면 꼭 지켜야 합니다.’ 라는 YES 조항이 248, ‘하지 말아야 합니다.’라는 NO 조항이 365개입니다. 이 둘을 합하면 613개 조항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지킵니까? 우리 몸의 뼈마디가 248개입니다. 일 년은 365일입니다. 일 년 365일 지내는 동안 248개의 뼈마디를 움직일 때 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극성인 조항입니다. 유대인들 이것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복음을 전해도 이것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배경을 소상히 잘 알고 있는 사도바울이 전도하면서 느끼는 것은 유대인은 수십 년, 수백 년을 암송하고 묵상하고 지켜 왔으니 613의 조항을 잘 지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별문제 없습니다만, 이방인은 613가지를 세다가 무슨 말인지 모르기에 그것을 지키면서 복음의 본질을 놓치게 되어 예수를 믿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유대교 지지자들은 그래도 지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때 마침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가 사회를 맡고 있었는데 그 보고를 받고 성경을 인용하면서 회중을 주의집중하게 합니다.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9:11-12)” 라고 말씀하면서 사도바울의 안건을 잘 받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토론을 했습니다. 그러는 중에 613개 조항을 축조하는 중에 가장 중요한 것 4가지 즉 우상의 더러운 것, 음행, 목매여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고 나머지는 자유하는 것이 좋다는 것(15:20)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함이라(3:13-14)” “이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1:10).” 아주 확고한 메시지를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전도 여행의 묘미입니다. 전도 여행을 다녀오면 메시지가 확실해 집니다. 이때 야고보가 사회를 맡았습니다. 그러니 야고보가 믿음 원칙행동요령을 말해주었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인데,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2:17)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권고했습니다.

 

이 메시지를 붙잡고 2차 전도여행을 나갑니다(16-18). 아시아의 꽃인 에베소로 가려고 하는데 자꾸 성령이 막았습니다. 무시아로 가려 하는데도 막았습니다. 비두니아로 가려 하는데도 막았습니다. 결국 바다 건너편인 유럽으로 갔습니다. 유럽의 관문인 빌립보로 갔습니다. 거기는 알렉산드리아의 아버지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도시입니다. 이어서 마케도냐의 수도 데살로니가에 갔습니다. 마게도냐는 알렉산더의 고향입니다. 그의 부하 카산더가 이곳을 차지하고 나서 알렉산더의 여동생 살로니가를 기념하기 위하여 데살로니가로 이름을 정했습니다.

물론 전쟁을 통하여 얻은 도시였기에 항상 불안이 상존했습니다. 남자들은 전쟁터에 참여하기에 현지에 처들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여자들은 경건한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만왕의 왕이 인생의 모든 죄의 문제를 십자가에서 해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에 가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떤 어려움이 와도 경건한 마음으로 주님의 오심을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십시다.’ 그게 데살로니가 전서의 내용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는 고린도에서 전도할 때 갈라디아 교회가 재림의 소망을 가지고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더러는 재림준비를 하지 않고 재림하니 일할 필요 없다고 하면서 오히려 방탕하듯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이에 재림을 준비하면서 지내라. 주님의 도적같이 온다는 말씀으로 깨우치는 내용을 적어서 보냈습니다.

 

3차 전도여행을 하는 중에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썼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2차 전도여행 중에 세운 교회입니다. 고린도 지역은 스파르타 군대와 그리스 군대가 패권싸움을 했던 장소로서 항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쪽은 디오니우스의 여신을 섬기며 향락과 성창에 빠진 도시입니다. 그곳은 소비 도시로서 성적 타락에 빠져 있었기에 그곳은 문제가 많습니다. 재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하지만 현실을 떠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현재 문제를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가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에베소에 있는 바울에게 편지를 가지고 왔기에 답하는 내용을 적어 보냈습니다. 그 세부내용은 1)분파문제 2)패륜아문제 3)판결문제 4)결혼과 독신 5)우상의 제물 6)바울의 사도성문제 7)주일날 공동식사 문제 8)여인이 수건 쓰는 문제 9)은사문제 10)부활문제 11)연보문제를 적어 보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바울은 이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도 작정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고린도 교회가 바울의 편지에 만족을 못하고 불평하면서 사도바울이 사도가 맞느냐며 그 정체성에 대하여 물어왔습니다. 여기에 대한 답변이 바로 고린도 후서입니다. 이런 일들이 있어서 괴로웠는데, 다 해결되고 고린도에 가서 3개월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5)복음 진수의 결정판, 로마서 탄생

이때 로마를 바라보면서 복음의 원리와 실천내용에 대해 지금까지 심사숙고한 성경의 내용을 정리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로마서입니다.

그래서 로마로 가게 됩니다. 많은 학자들이 이것을 로마로 가는 여행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중에도 이것을 로마로 가는 여행이라기보다 제4차 전도여행이라고 보는 분들도 많습니다. 저도 후자에 속합니다. 사도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가는 중에 가이사랴 감옥에서 두 해를 보내게 됩니다. 유라굴로 광풍을 만났지만, 무사히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로마에서도 감옥에서 생활합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몸은 갇혔지만 복음은 가둘 수 없다.’ 각오아래 편지를 통하여 전도의 메시지를 확고하게 정리했습니다. 이것을 이름하여 옥중서신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복음 전도현장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교회현장, 하나는 사회현장입니다. 교회현장에 적합한 메시지를 담은 편지가 에베소서입니다. 사회생활에 필요한 메시지를 담은 빌립보서, 교회현장의 핵심가치인 그리스도는 골로새서, 사회생활의 핵심가치인 인간관계는 빌레몬서에 잘 정리돼 있습니다. 이런 편지를 써서 리쿠스 계곡에 있는 골로새교회, 라오디게아교회 히에라폴리스(파묵칼레) 교회에 회람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다가 감옥에서 잠시 풀려나옵니다. 사도바울은 당신이 살아 있는 동안 주님이 재림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전도하며 세운 교회를 돌아보면서 교회를 돌볼 사람을 선정하고 세우도록 합니다. 에베소 교회에 디모데, 그레데 교회에 디도를 세웁니다. 그 후 네로 황제의 핍박 중에 잡혀서 마메틴 감옥에서 끝내 순교를 합니다. 그때 바울사도는 최후의 부탁을 남깁니다. 이 세 편의 편지를 쓴 기간을 우리는 5차 전도여행 때로 보고 있습니다.

 

6)바울사도의 뒤를 이은 후기 사도시대

그 다음은 사도 후기 시대입니다.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라오디게아,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그의 목회 메시지는 산 소망을 가지세요.’입니다. 베드로 후서는 고난 중에 인내를 부탁합니다.

히브리서는 믿음의 내용을, 요한 일이삼서는 사랑의 내용을 기록하여 편지를 읽으면서 난세를 잘 이겨 나가도록 부탁하고 있습니다. 유다서에서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유사품에 주의 하십시오. 같은 것처럼 보이고, 비슷한 듯해도 진짜가 아닌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이단입니다. 유다서는 이단을 주의하라는 내용입니다.

제가 성경을 정리하자 세상이 보였습니다. 저의 이름이 인터넷에 올려 지자, 어떤 분이 저희 교회 홈페이지에 이런 글을 올리셨습니다. ‘늙은 새끼 죽인.’, 그러니까 곱게 늙으라고.’

무슨 말인가 싶어 조금 자세히 읽었더니, 실상은 제 이야기가 아니라 이만희 씨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제 이름이 이희만이니까, 신천지의 이만희 씨인 줄로 오해를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답을 올렸습니다. ‘이희만과 이만희 씨는 다른 사람입니다. 이희만은 대한민국의 교육자원부가 인정하는 정통의 신학교를 졸업했고, 이만희 씨는 아닙니다. 유사품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저에게 이 일이 있은 후 새벽예배를 마치고 오늘 주신 말씀을 바탕으로 인터넷 사이트에 새벽이슬이라는 ID로 글을 써서 새벽기도에 참여 못한 성도들에게 나누어 드리고 있습니다. 새벽이슬 한 잔 드시고 힘내서 출근하시라. 나중에 알고 보니 아침이슬도 있고 참이슬도 있어요. 새벽이슬은 아침이슬과 다릅니다. 아침이슬은 많이 마시면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새벽이슬은 아침에 마시면 건강에 참 좋습니다. 유사품에 주의 하세요. 특별히 부탁드립니다.

 

7)인류의 종말 예고, 요한계시록의 교훈

이제 마지막입니다. last scene만 남았습니다. 요한 계시록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지 20년이 지났습니다. 성도들은 모두 흩어진 상태에 있습니다. 마지막 때, 종말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런 혼란기에 이 세상의 경영을 누구에게 맡기는 것이 좋겠습니까? 교회입니다. 아시아의 7교회에게 편지하노니 12제자 중에 예수님의 사랑을 제일 많이 받은 요한은 모든 사도들 중에서 제일 오래까지 남았다가 문단속하고 천국에 올라오라는 명령을 받고 계시록으로 성경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구약은 deodicy입니다. ‘신정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항상 옳습니다.’라는 관점에서 읽어야 합니다. 신약은 항상 Escathology 종말론적 입장에서 읽어야 합니다. 우리는 마태복음(20:7)의 말씀처럼, 오후 5시에 출근한 사람입니다. 오후 6시면 마감입니다. 한 시간 후면 비가 폭풍우처럼 밀려온다는 일기 예보가 있습니다. 한 시간 안 에 들판에 널려 있는 곡식을 다 거두어 들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1년 농사지은 곡식이 다 헛수고입니다. 그래서 한 시간 안에 들판에 널려 있는 모든 곡식을 거두어 곳간에 들여야 합니다. 이렇듯 우리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시한부 인생과도 같은 때를 살고 있습니다.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하여 주님이 부탁하신 일들을 잘 감당함으로 잘했다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종의 자세가 아닐까요? 이런 사명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먼저 명심해야 할 일은, 첫째. 교회가 연합해야 합니다. 7개 교회가 나름대로 자기 장점이 있고 은사가 있습니다. 모여서 연합하여 장점대로 섬겨 나가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첫사랑이 장점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충성심이 장점입니다. 버가모 교회는 순교가 장점입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사업을 잘합니다. 사데 교회는 정체성이 확고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우정이 강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지속성이 강한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들이 장점을 함께 모으고 서로의 약점을 품어주면 도미티안 황제의 장벽을 이길 수 있습니다. 숫자로 보아도 우리는 7이고 그들은 하나이니, 7:1이 되는 것 아닙니까?

둘째. 먼저 7가지 인의 환란을 이겨야 합니다. 심판이 있기 전에 7가지 인의 환란과 7가지 나팔의 환란을 잘 이겨내야 합니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7가지 인의 환란입니다. 마지막에 어린양이,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인을 하나씩 떼실 것입니다.

첫째인은 흰 말입니다. 이는 전쟁을 의미합니다. 둘째인은 붉은 말입니다. 이는 질병을 의미합니다. 셋째인은 검은색 말입니다. 이는 가난을 의미합니다. 넷째인은 청황색 말입니다. 이는 포로로 잡혀가서 들짐승에 잡혀 죽어 시체로 남아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지구의 1/4의 인구가 죽습니다. 시급한 것은 이 환란에서 먼저 통과해야 합니다. 신명기 28, 레위기 26, 다윗, 히스기야, 에스겔, 이사야, 예레미야 등의 예언자를 통하여 확고하게 훈련했던 성경의 내용을 잘 체득한 사람은 거뜬하게 이겨낼 수 있습니다. 먼저 성도들을 이 4가지 인의 환란을 이겨내도록 훈련하며 은사를 개발해야 할 것입니다. 다섯 번째 인은 순교이며, 여섯 번째 인은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큰 지진의 환란입니다. 일곱째는 연속으로 나팔재앙으로 6번의 나팔재앙이 일어나더니 마지막 나팔 불 때 환란을 통과한 성도들이 주의 들림을 받는 것입니다.

그때 하늘로부터 우렁찬 나팔소리가 나면서 이리로 올라오라.”하는 소리와 함께 증인된 성도들이 하늘로 들림 받습니다(11). 이는 출애굽기 11, 12장의 유월절 행사를 기억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어린 양의 피를 바른 가족은 모두 10가지 재앙을 통과하고 무사히 죽음에서 빠져 나왔듯 모두 세상의 재앙에서 빠져 나와 들림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15장에는 불이 섞인 유리바다를 건너가서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부릅니다. 이 노래는 출애굽기 15장에 홍해 건넌 사람들이 부르는 놀라운 것입니다.

19장은 하늘나라에서 어린 양의 혼인잔치가 일어납니다. 이는 출애굽기 19장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결혼하고 십계명을 받는 내용과 연결해 볼 수 있습니다.

20장은 천년왕국이의 이야기입니다. 1,000년 동안 신혼여행을 갑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19장에서 결혼식하고 나서 40년 신혼 생활한 이스라엘 백성과 비교하면 엄청난 시간이지요. 천국에 가면 1,000년 동안 실컷 신혼여행을 하게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종말론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지나온 삶을 성경에 비추어보면서  주님과 방향 맞추는 삶을 회복하여

승리하여 천국동안 신혼여행에 참여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