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간은 우리교회의 수양회기간입니다. 대전에 있는  헬몬수양관에서 7월31일-8월 3일까지 진행됩니다. 이때 묵상하며 나의 마음깊이 새기고 싶은  언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스트브잡스의 스탠포드 대학의 졸업식 축사입니다. 그는 나보다 생일이 10일 빠르며 나와동갑입니다. 그런 그가 쓴 글이 나의 마음 깊은 곳에 새기고 싶었는데, 이번에 교회를 떠나서 수양회 가는데 거기서 마음깊이 암송하고 싶었습니다. 새벽에 저녁에 우리 주님이 은혜 주시는 대로 마음속에 새길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의 명연설

 

This is the text of the Commencement address by Steve Jobs, CEO of Apple Computer and of Pixar Animation Studios, delivered on June 12, 2005.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오늘 세계에서 가장 좋은 대학 중 한 곳에서 연설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오늘처럼 대학졸업식에 와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오늘 제 삶의 세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별다른 것 없이 세 가지 이야기들 입니다.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처음 이야기는 작은 것들(dots)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Reed 칼리지를 다니던 중 6개월 후에 중퇴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후 18개월 정도를 실제 그만두기 전까지 학생처럼 다녔었죠. 그러면 왜 제가 중퇴 했을까요?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They said: "Of course."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이 이야기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됩니다. 저의 생모는 젊고 미혼이었던 대학 졸업생이었고 그녀를 저를 입양시키려고 하였습니다. 그녀는 제가 대학졸업자에게 입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저는 태어나자마자 어느 변호사와 그 아내에게 입양되기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태어나자마자 그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것은 딸이라고 얘기했죠. 그래서 저의 부모님-대기자 리스트에 올라있던-은 한밤중에 이런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뜻하지 않게 남자 아이 한 명이 생겼습니다. 그 아이를 원하나요?’ ‘물론입니다’. 저의 생모는 나중에 제 어머니가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고, 제 아버지는 고등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입양계약서에 서명하는 것을 거부했죠. 그녀는 몇 개월 후 제 부모님이 저를 꼭 대학에 보내겠다고 약속하고 나서야 마음을 누그러트렸습니다.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17년 후 저는 대학에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순진하게도 스탠포드같이 비싼 대학을 선택했고 노동 계급이었던 저의 부모님의 수입은 고스란히 저의 대학 수업료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6개월 후, 저는 그 수업료에 그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제 인생에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몰랐었고 대학이라는 것이 그것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저의 부모님께서 평생 저축했던 돈을 수업료로 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학교를 중퇴하기로. 그리고 모든 것들이 잘 될 것이라 믿기로 말입니다. 그 당시에는 매우 두려웠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제가 결정했던 일들 중 가장 좋았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학교를 중퇴하고 나서는 흥미 없던 필수 과목들을 들을 필요가 없었고, 대신 관심 있었던 과목들을 청강할 수 있었죠.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 example:

 

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낭만적이진 못했습니다. 기숙사에서 생활 할 수 없었기에 저는 제 친구의 방 바닥에서 잠을 잤었고, 콜라 병을 주워 5센트씩을 받아 먹을 것을 샀습니다. 그리고 매주 일요일에는 Hare Karishna수도원에서 한 끼를 먹기 위해 7마일을 걸어 다녔죠. 그래도 저는 그 생활을 사랑했습니다. 저의 호기심과 진리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겪었던 어려움들은 나중에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재산이 되었습니다. 한 예를 보여드리겠습니다.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그 당시 Reed 칼리지는 컬리그래피(미적양식의 서법)로 엄청나게 유명했었습니다. 대학 내의 포스터나 책상의 라벨들은 아름답게 찍혀져 있었지요. 저는 중퇴하고 일반 과목들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에 저는 컬리그래피를 이해하기 위해 그 과목을 듣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저는 serifsan serif 폰트들을 통해 서로 다른 문자조합에 어느 정도의 여백이 있어야 하는지, 무엇이 좋은 타이포그래피들을 만드는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름답고, 역사적이며, 예술적으로 과학이 알 수 없는 신비한 매력을 발산하였습니다. 저는 그것에 빠져들었습니다.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이것들은 실제 어플리케이션들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10년 후, 우리가 첫번 째 매킨토시 컴퓨터를 디자인할 때, 엄청난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들을 모두 매킨토시에 적용하였습니다. 매킨토시는 아름다운 타이포그래피를 가진 첫 컴퓨터였습니다. 제가 만약 그 때 컬리그래피 수업을 듣지 않았었다면 매킨토시는 다양한 폰트와 여백의 조화를 가진 컴퓨터가 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또한 Windows가 매킨토시를 모방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디자인된 퍼스널 컴퓨터는 나오지 못했습니다. 제가 만약 중퇴하지 않았다면, 그 컬리그래피 수업을 듣지 못하였을 것이고 아름다운 타이포그래피를 가진 퍼스널 컴퓨터들은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 작은 일들(dots)의 연결들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했던 일입니다. 하지만 10년 후에 뒤 돌아 보면 그것은 매우 명확한 것입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다시 말해, 여러분들은 작은 일들(dots)을 예측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단지 뒤 돌아 볼 때에만 그것들과 연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언제가 그 작은 것들이 미래에 여러분에게 연결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인가를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선, 운명, 카르마, 무엇이든간에 말이죠. 이러한 접근은 저를 실망 시킨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저의 삶에서의 모든 차이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I was lucky ?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저의 두 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이별에 대한 것입니다.

제가 인생 초반에 무엇을 사랑하는지 발견할 수 있던 것은 정말 행운이었습니다. Wozniac과 저는 제가 스무 살 때 부모님의 차고에서 Apple을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열심이 일했고, 10년 후 Apple은 차고 안의 저희 둘로부터 4,000명의 사원을 가진 20억 달러의 회사로 성장하였습니다. 우리는 제가 서른이 되기 일년 전쯤 매킨토시라는 가장 좋은 창조물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해고되었지요. 어떻게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해고당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Apple이 성장함에 따라 우리는 저와 함께 할, 회사 경영능력이 탁월하다고 생각한 사람을 채용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후 미래에 대한 우리의 비전들은 갈라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사이가 틀어졌지요. 그렇게 되었을 때, 이사회는 그의 편을 들었고 저는 서른 살에 해고된 것입니다. 미디어에서도 엄청나게 떠들어댔었죠. 제가 성인이 되어 이루었던 것들은 사라지고 피폐해졌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저는 그 후 몇 개월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저는 이전 세대 창업자들의 몰락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제게 오는 바톤을 제가 놓쳐버린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David Packard(휴렛 패커드 창업자)Bob Noyce(인텔 창업자)를 만나서 일이 나쁘게 틀어진 것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저는 공개적으로 실패자로 낙인 찍혔고 실리콘 밸리로부터 도망쳐 나갈 생각조차 하였습니다. 하지만 천천히 저는 제가 하던 일들을 아직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Apple에서의 해고는 그 사실을 바꿔놓지 못했습니다. 저는 쫓겨났지만, 저는 계속 그 일들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 후, 저는 새로 시작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그 당시 저는 깨닫지 못했지만, Apple에서의 해고는 제게 일어났던 일들 중 가장 좋은 일이었습니다. 성공한 자로서의 무거움은 다시 시작하는 자로서의 가벼움으로 바뀌었고, 다른 일들에서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저는 제 인생에서 가장 창조적인 시기로 접어들게 된 것입니다.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 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그 후 5년 동안, 저는 NeXTPixar라는 회사들을 시작하였고, 지금의 제

 

아내가 된 매력적인 여성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Pixar는 세계 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어냈습니다. 바로 ‘Toy Story(토이 스토리)’입니다.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제가 만약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다면 이러한 일들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약을 삼키는 일은 두려운 것이지만 환자에게는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때로 삶이 당신의 머리를 두꺼운 벽돌로 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믿음을 버리지 마십시오. 저는 제가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은 저의 일들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확신합니다. 여러분들은 일에 있어서나 연인에 있어서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일은 여러분들의 삶에 있어 커다란 부분이 될 것이며, 정말로 만족하기 위해서 자신의 일이 위대한 것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아직 그것을 찾지 못하였다면, 찾으십시오. 현실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그것을 찾아냈을 때, 마음 속으로부터 자신이 사랑하는 일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관계들이 그러하듯,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지고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그것을 찾을 때까지, 찾으십시오. 안주하지 마십시오.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저의 세 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대한 것입니다.

제가 열 일곱 살 때, 저는 다음과 같은 격언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매일을 당신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가장 당당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 격언은 제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지난 33년 동안, 저는 매일 아침 거울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오늘이 내 일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이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인가?” 그리고 여러 날 동안 그 대답이 아니오일 때, 저는 제가 무언가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Because almost everything ?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제가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제 삶에 직면한 커다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것들 -외부의 기대, 자존심, 당황이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 은 죽음 앞에서 진실로 중요한 것 하나만을 남겨 놓은 채, 사라지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결국 죽을 것이라는 기억하는 것은 당신이 잃어버릴 것들에 대해 두려워 하는 것에서 여러분을 구해 줄, 제가 알고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당신은 이미 벌거벗은 상태입니다. 당신의 마음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일 년 전쯤 저는 암 검사를 받았습니다. 아침 일곱시 반쯤 진찰을 하였고 췌장에서 종양이 발견되었지요. 저는 그 때 췌장이 무엇인지 조차도 몰랐습니다. 의사들이 제게 말하길, 그 종양은 치료가 불가능한 종류이며 석 달에서 여섯 달까지 밖에 살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저의 주치의는 제게 집에서 푹 쉬라는, 죽음을 준비하라는 말을 돌려 말할 때 사용하는, 조언을 하더군요. 그것은 여러분들의 자식들에게 향후 10년간 해 주어야 할 말들을 단 몇 개월동안 말해주어야 하는 것을 의미하며 모든 것들을 정리해서 여러분의 가족들이 가능한 신경 쓰지 않게 하는 것을 의미하고, 작별인사를 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저는 하루 종일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 날 저녁 저는 생체 조직 절편 검사를 받았습니다. 의사들이 내시경을 제 목과 위를 거쳐 장에 넣은 후 췌장의 세포를 떼어내기 위해 바늘을 넣었습니다. 저는 침착했지만, 함께 있던 저의 아내는 의사들이 세포들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면서 기뻐 소리질렀다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그 췌장암은 매우 희귀한 형태라서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이렇게 건강합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이것은 제가 죽음에 가장 가까이 직면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수십 년 뒤에 볼 때에도 가장 가까웠던 것이길 바랍니다. 그 일을 겪고 나서 저는 당신에게 죽음을 단지 머리 속의 생각으로 말할 때 보다 좀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죽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 조차 그 곳에 가기 위해 죽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죽음은 우리 모두가 인정하는 종착역입니다. 아무도 그것으로부터 탈출 할 수 없으며, 아무도 탈출할 수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삶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삶을 변화시키는 요원입니다. 늙은 이들은 새로운 이들을 위한 길을 만들어 냅니다. 지금, 새로운 이는 당신입니다. 하지만 머지 않은 후에, 당신은 점점 늙어갈 것이고 결국 사라질 것입니다. 문학적인 표현이지만, 절대적인 사실입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당신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삶을 살면서 헛된 시간을 보내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인식에 따라 삶을 살게 된다는 학설의 함정에 빠지지 마십시오. 당신 내면의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의 시끄러운 의견들로 사라지지 않도록 하십시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를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과 직관은 당신이 무엇이 되기 원하는지 어떻게든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다른 것들은 일순위가 아닙니다.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제가 어렸을 때, 제 일생의 바이블이 된 The Whole Earth Catalog라는 놀라운 책이 있었습니다. 그 책은 이 곳에서 멀지 않은 Menlo ParkStewart Brand라는 사람이 발행한 책인데, 그는 문학적인 감수성으로 그 책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그 당시는 퍼스널 컴퓨터와 데스크탑 퍼블리싱이 나오기 이전인 1960년대였습니다. 따라서 그 책은 타자기와 가위 그리고 폴라로이드 카메라들로 만들어졌으며, 그 책은 Google이 나오기 35년 전, 문고판의 Google로 비견될 수 있었습니다. 그 책은 이상적이었으며 좋은 도구들과 훌륭한 개념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Stewart와 그의 팀은 The Whole Earth Catalog의 여러 판을 발행하였고 시간이 흐르면서 마지막 판을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는 1970년 중반이었고 당시 저는 여러분들의 나이었습니다. 마지막 판의 뒷 표지에는 여러분들이 여행을 좋아한다면 히치하이킹 도중 발견했을 만한 이른 아침의 시골길 사진이 실려있었습니다. 그 사진 아래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었습니다. “배고픈 채로, 바보처럼”. 이 말이 그들이 마지막 판을 발행하면서 전하는 작별의 인사였던 것입니다.

배고픈 채로, 바보처럼. 저는 자신에게 항상 이 상태를 바래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새로움을 시작하기 위해 졸업하는 여러분들에게 이 말을 바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Thank you all very mu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