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여름 수련회 주제 네 믿음을 보이라 ( 2;26)

 

올해는 2017731( )부터 83() 까지 대전 헬몬 수양관에서 실로암 세계선교회의 주최로 온 교인이 영성 수련회에 참여했다. 월요일 아침 김포공항에서 대전행 직행 버스를 탔는데, 차안에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나중에는 우리 가족 외에 한 승객만 내렸다. 마치 우리를 위하여 그 큰 차를 대절할 것 같았다. 다행히도  나는 차를 운전하지 않았기에 차안에서 자유롭게 눈을 감고 묵상하기도 하고, 이런 수련회에 참여하여 나의 묵은 미해결과제들을 점검하기도 했다. 감사하게도 이번에는 목회자로서 부담을 가지고 참여하는 수련회가 아닌 그냥 멤버로서 참여하기에 아무 부담이 없어 즐기기로 했다. 그래서 나 자신의 주제에 몰입할 수 있는데, 한 가지 주제를 정리했었다. 그것은 무엇인가 하면 나를 평생 괴롭혀온 온 영어 이다. 영어 성경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성경을 읽을 수 있을 정도는 된다. 그러나 그 읽을 것을 말을 하거나 나의 경험으로, 신앙고백으로 말하라고 하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또 글로벌 시대에 열려있는 세계뉴스가 나의 손에서 본다 해도 나는 리스닝( listening )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정상급들이 정하는 세계 뉴스를 들을 수 없는 것이 나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평생 그냥 영어는 포기하고 살 것인가? 아니면 이제라고 꼭 listening을 정복하여 주님의 필요하다고 한다면 나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지금부터 준비할 것인가? 결단해야 하는 것이 마음속에 있는 나의 미해결과제이다.

이번 수련회에는 이런 과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고 싶다. 이번에 주제가 내 믿음을 보이라 이기에 여기에 대한 실마리를 풀 준비를 꼭 하고 현장으로 내려 와야 하겠다. 그래서 준비하고 가방에 넣어둔 스티브 잡스의 영어 연설문을 찾아보았다. 그는 나와 동갑인데, 나보다 생일이 10일 빠르다. 그에게는 꿈이 있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손에 스마트 폰을 넣어 주고 싶어 했다. 그 꿈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소원을 성취하고 인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 하나님의 나에게 주신 사명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나의 생명을 연장하셨다. ‘아브라함을 75세에 부르셨고, 모세를 80세에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나를 언제 부르실지 모른다. 그때가지 준비하고 있다가 주님 부르시면 마음껏 주의 이름전파에 온몸을 바쳐 충성하다가 가야지라고 결심하면서 준비해야 한다고 고백했지만 미거적미거적 거리면서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오늘까지 왔다. 이번 여름수련회에 그 믿음을 통해서 다시 나를 진단하면서 그 믿음을 보여 주는 징조가 나에게 있기를 바라는 기도를 드렸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가는 중에 졸음이 오는지라 좇아내지 못하고 안락의자를 되로 댕기로 잠을 청했다. 한참 후에 창문을 세게 때리는 바람소리와 빗소리에 잠이 깨었다.

도착해 보니 이미 개회예배는 드렸고, 다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다른 성도들도 비바람에 세게 몰아칠 때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 믿음을 내게 보이라 기대되는 주제이나. 개회예배 시간에 참여하지 못했다. 아쉽지만 나 혼자서 대강 측정하면서 주님에게 다 가려고 성경을 붙들었다.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2:26)

 

야고보는 사도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하고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총회에 참여했을 때 사회를 보았던 주님의 제자이다. 예루살렘1차 총회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차이를 선명하게 나타나는 중요한 회의이다 선교 지침을 지정하는 중요한 회의로서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유대인과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믿음을 강조하며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초대교인을 비롯한 사도들의 큰 관심이 집중되어 있던 때이다. 정통 유대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믿어도 613가지 조항인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명제를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1차 전도여행을 다녀온 사도바울은 이방인에게 처음부터 복음을 받아 들이기전에 율법을 강조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리고 그리스는 율법의 완성을 나타나는 복음이기에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이 두 가지 논제가 팽팽하게 내세울 때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같은 야고보는 베드로의 후원을 얻어서

아모스 9:11에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회복하여 다시 지으며 일으킬 때가 왔다고 주장하며 , “그 말씀은 남은 사람들과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고 ( 9:17)‘ 해석하면서 이방인들이 주님께 돌아오는 것이 중요한 관점이라는 사실에 방점을 찍어 주었습니다. 그 대신 율법을 하나하나 점검하는 중에 613가지 중에서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15:29)’라는 말씀에 의지하여 네 가지만 지키기로 결의 했다.

이 내용을 가지고 온 지역에 흩어져서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에게 복음의 진수를 전하는 내용이 갈라디아서이다. 이에 대하여 유다는 후속조치를 행위에 대해 강조하여 믿음과 행위는 동전의 양면과 같듯이 행동으로 믿음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경향 각지에 흩어진 신앙인들에게 전한 내용이 유다서이면서 본문의 내용이다.

 

나는 어떻게 나의 믿음을 행동으로 보일까 생각해 보았다.

먼저 믿음의 관점( view of point)의 지평을 열기 위하여 영안을 열어 주소서 기도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이는 하나님의 나에게 주어진 특별한 영감으로 5가지 관점에서 성경을 보는 눈을 개발하는 것이다.

 

1. 과거를 보는 눈이다. hindsight이다. 이는 지나간 나의 삶의 발자국을 보면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걸어왔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1학년 때 일이다. 남자는 밭을 갈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방학 때가 되면 소를 몰고 모래밭에 가서 밭가는 연습을 했다. 처음에는 소의 고삐를 잡고 쟁기를 잡고 밭을 가는데, 뒤를 돌아보았다. 밭고랑이 비뚤비뚤하였다. 부끄럽다. 밭고랑이 비뚤비뚤하여 농사를 지을 수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밭을 갈 때는 앞에 목표를 정하여 그 목표만을 보면서 곧 바로 가는 것이다. 그러면 나중에 보면 목표까지 잘 갈수 있다. 이런 교육을 아버지에게 받고 다시 밭을 갈았다. 역시 그 들은 말씀대로 했더니 밭고랑이 바르게 나 있었다. 영적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창세기에서 느헤미야까지의 역사서를 읽다 보면 이스라엘 백성의 과거사에서 하나님의 지시하신 땅에 도착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까지 많은 시행착오한 것을 보게 된다. 이를 읽으면서 오늘의 현실에서 나의 과거사를 수정한다. 그 말씀에 맞추어 보면 나의 과거의 잘못을 다 고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바르게 갈수 있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2, 현재를 보는 눈이다. insight 이다. 이는 시가서인 욥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이다. 5가지를 읽으면서 왕으로서 어떻게 현실의 삶을 잘 극복하여 왕같은 삶을 현실에서 잘 누릴까 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in sight는 내면을 보는 눈이다. 현재의 삶을 보면서 나의 내면을 보게 된다. 나의 마음속에서 생각하고 고백하고 찬양하는 내용이 바로 현실에 나타나기 때문에 왕같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은 바로 내면관리를 잘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3.미래를 보는 눈이다. foresight이다. 미래를 보는 관점이 보인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현재 이곳에 왕권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다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학자들은 already not yet이라고 말한다. 미래를 향하고 꾸준히 목적에 맞게끔 목표를 세우고 그곳을 향햐여 나아가야 한다. 이런 내용이 예언서에 기록되어 있다. 이사야에서부터 말라기까지가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그리스도의 나라를 바라보게 하는 내용이다.

 

4. 현재 임재를 체험하는 신앙이다. outsight이다. 이는, 과거 속에 있고, 현재 마음속에 있고, 미래속에 그리는 그 내용을 한눈에 볼수 있도록 외부에 나타나는 믿음이다. 이는 마태마가, 누가, 요한 복음의 4복음서로서 구약의 과거를 보는 눈 hindsight, 현재를 보는 눈 insight, 미래를 보는 눈, foresight를 통틀어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돈된 것을 보는 눈이다. 체표 반사 이론이라는 말이 있다(reflexology). 이는 몸 안에 있는 내용이 몸밖에 반사하여 나타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나라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땅에 거한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에 대한 모든 내용, 과거, 현재, 미래에 나타난다는 구약 66권의 성경 말씀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내용이 예수님이 이 땅에 강림하셔서 한꺼번에 다 보여주신 것이다. 이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우리 신앙인들의 눈인 것이다.

 

5.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을 보는 눈이다. see through sight이다. 이는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가 내가 현장에 나가니 그대로 펼쳐지는 것을 보는 눈을 말한다. 성경으로 말하면 사도행전에서 1, 2, 3, 4, 5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점점 안정되게 신앙의 관점의 눈이 열리게 하여 주시면서 계시록의 종말에 승리하여 영원한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가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동참하는 것이 우리 신앙인들의 삶이다. 이런 믿음의 눈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다면 우리는 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그관점으로 세상을 볼 때 하나님의 나라가 나에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이라고 할 것이다. 이런 내용을 생각하면서 성경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성숙하게 믿음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하는 여름 수련회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가능한한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어서 묵상했다. 감사한 것은 주변을 돌아보았더니 한남대학이 있었다. 넓은 공간에 조용히 돌아보니 기도한 흔적들과 말씀의 응답을 받은 흔적들이 보였다. 그중에서도 심은대로 거두리라( you reap whatever you sow 6:7)’ 라고 기록된 돌비가 나의 마음에 응답으로 다가왔다. 그렇다. 시간이 있을 때 마다 말씀을 심자, 사랑을 심자, 믿음을 심자, 비전을 심자. 이로서 나의 믿음을 보여 주자.


  참으로 감사한 것은 마지막 날 폐회예배 중에 안성삼 목사님이 어떻게 믿음을 보일 것인가? 확실하게 방점을 찍어 주신 것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회개를 통하여 믿음을 보여 준다. 어떻게 보여 주는가 하면 나아만처럼 나만이라도 보여 준다. 이것을 차근 풀어 주셨다.

 

회개는 껍질을 벗기는 행동이다.

마치 밤나무에서 밤을 발견했을 때 그 밤을 따먹기 위해 땅에 떨어 드린다. 밤알을 주우려고 했더니 가시가 많아서 그 가시가 있는 껍질을 발로 밟아서 벗겨야 한다. 껍질을 벗겼다고 그냥 먹을 수 없다. 다시 밤알을 가져다가 칼로 껍데기를 걷어내야 한다. 그때 그 안에 벌레가 먹지 못하도록 떫은 맛을 내는 엷은 막이 있다. 그것을 벗겨내어야 한다. 그리고 삶을 때 맛있는 밤을 먹을 수 있다. 여기에 나만도 마찬가지이다. 요단강물에 들어 가려면 벗어야 한다.

 

1)지위의 껍질을 벗겨야 한다.

장군의 지위의 군복 , 왕의 친서, 호위부대, 금은선물의 물질, 다 벗긴다.

 

2) 생각의 껍질을 벗긴다.

내 생각에는 식민지의 국가 이스라엘이 정복국가요, 강대국의 장군의 방문에 대하여 거대한 의전 거행함으로 치료의식을 통하여 낫게 될 줄 알았다. 그렇지 않으니 돌아가려고 했다. 냉담하게 대하는 엘리사의 대우가 못마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청사진을 바라보면서 생각의 껍질을 벗어 버렸다.

 

3) 불신의 껍질을 벗긴다.

내 생각에는 요단강의 더러운 물보다는 고국의 다메섹의 아바나 강물이나 바르발 강물이 훨씬 깨끗한데 거기가 좋겠다는 생각을 버려 야 한다. 온천탕이아니더라도, 깨끗한 강물이 나이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계신 곳이니 순종하겠다고 고백하면서 나의 불신의 껍질을 벗겨버린다.

3) 마지막까지 순종하면서 껍질을 벗긴다.

모든 의심과 불신과 생각과 자존심의 껍질을 다 벗기고 계속 벗길 것이 없을 때까지 계속 벗기고 또 벗기고 벗겼다. 7번째 까지 벗기고 물에 들어갔더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같이 깨끗하게 되었더라.’( 왕하7:14)

나이 들었다고 노인척 했으면 노인의 살같이 되었을 것이다. 어린아이처럼 모든 것을 다 벗어버렸더니 어린아이 살같이 깨끗하게 되었다.

 

오늘 나의 삶을 돌아보면서 내가 하나님 앞에서 보여줄 믿음을 무엇인가? 하나님이 보시거나, 사람들에게 보여 줄 나의 믿음은 무엇인가?

이제 준비해야 한다. 서두를 것 없다. 일단 벗기는 작업에 집중한다. 모든 것이 다 벗겨질 때 까지 벗는 것으로 나의 믿음을 보여줄 준비를 한다. 벗기기 힘든 부분이 있어도 인내하고 참을 수 없는 수모가 온다 해도 참고 또 참고 참으면서 믿음을 보여 줄 준비를 한다.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에 와서 나의 껍질을 벗긴다 해도 참고 인내하면서 벗겨 보자, 내가 나의 껍데기를 벗기지 못할 때 다른 사람이 나의 껍데기를 벗겨 준다 하자. 못마땅해 하면서 미워할 것이 아니라 수용하면서 벗자.

 

사랑의 주님

이왕 저를 불러 주시고 깨닫게 하셨사오니 나의 낡은 껍질을 벗길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계속 벗기고 벗길 때 감당할 수 있는 인내를 주옵소서. 어린애와 같은 심정으로 물에 뛰어 들게 하시고, 어린애와 같은 심정으로 멱을 감게 하시고 어린애와 같은 심정으로 물속에 들어왔다 나갔다 하면서 껍질을 벗겨내어 믿음을 보여 주는 순간이 오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받았다.

 

폐회예배를 마치고 안 목사님에게 인사를 드렸다.

명심하겠습니다. ”

물론 안목사님에게만 고백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고백한 말이다.

그렇다 나의 믿음을 보여 줄때까지 나는 옛날 껍질을 벗기고 또 벗기고 벗기리라.

이것이 이번 201783일에 마치는 우리교회 수련회에서 얻은 신앙의 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