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캇 토라

 

심캇 토라는 토라의 기쁨의 날이라는 뜻입니다. 일년에 토라(모세 오경)를 한 번 완독한 것을 기뻐하는 날이지요. 일년 농사를 다 거두어들이고 나서 마지막 날(여덟 번째날) 두루마리 성경을 안고 돌면서 기뻐합니다.

육신의 열매로는 밀, 보리 포도, 무화과, 석류, 감람열매, 대추야자들이 열매를 신나게 팔팔하게 맺는 것에 대한 감사의 축제요( 8;8), 영적으로 는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 자기 관리, 온유, 충성, 양선, 자비, 오래 참음, 화해 희락, 사랑으로 성령의 최고의 열매인 희락의 열매를 기뻐하면서 감사하는 날입니다(5:22-23).

 

장막절의 축제기간은 7일간입니다(레위기 23:39; 민수기 29:12). 그런데 레위기에 따르면 제8일을 첫 날 처럼 안식의 날로 민수기에 따르면(35) 거룩한 대회로 모이는 날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주후 9세기 이후로 유대인들은 이 날(장막절의 제8)씸캇 토라”(토라의 기쁨)의 날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8일을 씸캇 토라라는 축제로 지켜지게 되었을까요? 토라(5)54개의 파라샤” (פרשה) - 이는 바벨론 계열에서 일년 주기로 5경을 읽기 위해 만든 단위이며, 예루살렘 계열에서 만든 3년 주기 읽기의 단위는 시드라”(סידרה)라고 함 - 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매 주 안식일에 회당에서는 하나(때로는 2)파라샤를 읽게 되고 일년이 되면 오경을 완독하게 됩니다. 장막절이 끝나고 제8일은 신명기의 마지막 파라샤를 읽고 이어서 창세기의 파라샤를 읽기 시작하는 날입니다. 오경을 완독하고 새로이 창세기를 읽기 시작하는 이 날을 씸캇 토라”(오경의 기쁨)라 하여 축제를 즐깁니다.

 

심캇 토라의 저녁과 다음날 아침 회당에서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토라를 들고 회당의 강대상 주위를 일곱 바퀴 돌게 됩니다. 이 때 성인식 - ‘바르 미쯔바라고 하며 13세에 행함 - 을 마친 남자 아이들은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회당에서 파라샤를 읽는 자로 데뷔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날에는 특별히 13세 이하의 어린아이들도 강대상으로 불러내어 축복하게 되는 데 이 날의 예배 인도자가 아이들에게 탈리트(기도할 때 쓰는 쇼울)를 덮어 주고 아이들은 인도자의 축복의 말에 응답합니다. 이 예식을 통해 13세 이하의 어린 아이들도 하나님의 말씀과 임재 앞에서 존귀히 여김받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해 주는 것입니다.

 

이 날 신명기의 마지막 파라샤를 읽은 사람을 하탄 토라”(חתן תורה)라고 칭합니다. 하탄 토라가 드디어 토라의 마지막 파라샤를 다 읽게 되면 회중들은 모두 우리는 강하고 강하게 되었다고 외칩니다. 그리고 다 읽은 오경의 두루마리를 감고 새로운 오경의 두루마리를 꺼내어 창세기의 파라샤를 읽기 시작합니다. 이 때 처음 낭독자를 하탄 브레쉬트”(חתן בראשית)라고 부릅니다.

이 날 밤에는 동네 거리를 노래를 부르고 행진하며, 회당의 뜰에서 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춤추고 노래하는 축제를 벌입니다. 오경의 두루마리를 높이 치켜들고, 아이들은 기쁨의 표시로 형형색색의 깃발에 장식을 하여 흔들며, 아버지는 아이들을 무등태우고 춤을 춥니다. 아버지도 이 날에는 아이들과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어린아이가 됩니다.

 

 

 

 

1. 명절 끝날

 

 

오늘 본문에서 요한이 기록하고 있는 명절 끝날이란 초막절의 끝날 팔일 째 되는 날을 말하는 것입니다. 초막절은 성서력 715일에 시작되어 7일간 지키고, 8일째 되는 날에는 끝 날이면서 큰 날로 장엄한 대회(셰미니 아쩨렛)를 열어 토라를 주신 것을 기뻐하며(심캇 토라) 제사, 현대는 축제로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또 다른 하나님의 숨겨진 비밀이 풀어지기를 소원하면서 하늘로 부터 큰 은혜가 부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37절을 보면 명절 큰 날, 곧 끝 날에 성전에서서 예수께서 외치셨습니다. 초막절 끝날은 진정한 종말의 끝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기를 잘 다루지 않지만은 절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입니다. 7개의 절기는 창1장의 7일의 창조와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절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의 역사를 계시하고 그 마지막 초막절의 끝날 구원의 완성을 보여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31"이 날은 준비일이라" 어린양이신 예수께서 죽으시고 유대인들에게는 큰 안식일, 즉 유월절의 시작이 되는 큰 날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구원의 시작도 큰날이고 마지막 구원의 완성의 날도 큰 날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절기의 큰 날의 어린 양으로서 세상의 죄를 대속하셨으며, 이것이 구원의 시작을 보여 주시는 것이고 우리의 처음 믿음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생각할 것은 우리의 믿음이 이 처음 구원과 믿음의 틀안에 갇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 공부를 하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그 감추어진 마음을 읽어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라 할수 있습니다. 1:16절을 보면 중간에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라고 바울은 전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제 믿는 초신자를 의미한다기보다 이미 믿고 있는 성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잘 믿고 있는 성도들이 들어서 구원의 기름부음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어 17절에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하시고 있습니다. 즉 복음에는 ''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절기 안에는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어 있어, 이 복음을 아는 자는 믿음에서 믿음으로 나아가게 됨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유월절에 처음 믿음이 초막절의 완성의 믿음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일은 이 믿음이 가리워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믿음은 우리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며 예수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절기는 예수그리스도의 믿음인 것입니다.

 

 

다시 요7:37절을 보면 초막절의 완성의 믿음이 나타나 있는데 완성된 큰 구원이 무엇인지 계시하셨습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절을 보면 이미 믿은 자들이 받을 은혜를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것이 구원의 완성과 믿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9절을 보면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성령이란' 두 단어가 나오고 있는데 앞에는 '프뉴마토스'로 되어 있고 가로안에는 the 프뉴마로 되어 있습니다. 가로 안에는 그 영이란 의미입니다.

 

 

다시 요6:63절을 보면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레마)은 영이요 생명이라"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말씀이 그 생명이고 그 말씀, 즉 레마를 받은 자의 배에서 생수가 나오는 것이 그 영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우리는 이영을 받아야 합니다. 요일5:6절을 보면 "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그 영이 진리라고 하시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진리의 영으로서 받는 자만 알게 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식을 넘어서 영을 알아야 하고 영을 받아야 합니다. 이 땅위에 수많은 가르침과 사역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영안에 들어간 사역자는 극히 드물다 할 수 있습니다. 이 영을 받을 때 그 받은 자의 배에서 생수가 흘러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때 하나님과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 구원은 높은 차원의 것입니다. 예수님이 배에서 생수가 흐른다고 한 것은 겔 47:7절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셨는데,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리더라" 여기서 동쪽은 감람산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성전 문지방에서 생수가 흘러나온다고 했습니다.

 

 

바로 그 문지방이 우리의 배가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고(고전6:19)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성전 문지방에서 흐르는 생수는 우리의 배에서 흐르는 생수와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에스겔이 받은 환상이고 새 예루살렘의 비젼이다. 바벨론의 강가에서 시온의 회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던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비전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성령을 구하고 생수만을 구합니다. 그래서 아주 적은 성령만 받게 됩니다. 그 성전의 문지방은 성전의 입구이며 성막으로 치면 회막문이며 그 회막문앞에서 그 제물을 잡았습니다. 즉 여호와의 면전 앞에서 송아지와 양을, 바로 성전의 문지방인 것입니다. 29:12절에서 그 피를 제단 밑에 쏟으라고 했습니다. 제단 아래가 문지방밑입니다. 문지방은 제단이고 십자가이고 보혈이 뿌려진 곳입니다. 이 문지방을 모르면 진정한 생수가 터지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진정한 생수가 열리기를 원한다면 진정한 피 뿌림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 자신이 온전히 십자가에 죽어야 합니다. 그것이 문지방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적인 본질을 갖지 않은채 생수를 구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형시적인 보혈과 십자가를 가지고는 생수를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생수의 터짐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철저한 자기 부인이 되지 않고는 자기 몫에 십자가를 지지 않고는 우리가 구하는바 생수를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 성전이고 문지방인데, 예수그리스도의 피 뿌림과, 또 진정한 십자가와 세례가운데 거하여야만 합니다.

 

 

이 문지방은 히브리적 개념으로 결혼을 하게 되면 신부를 안고 문지방을 건너야 신혼방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그래야 결혼이 완성되고 한 새사람이 되었다고 인정을 합니다. 다시 말해서 문지방을 건너지 않으면 그는 문 밖에 사람으로 외인이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헤서 문지방을 건너면 안에 있는 사람이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고대 근동지방에서는 귀한 손님이 오면 송아지나 양을 잡아서 피를 문지방이나 문설주에 바르고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지방은 하나님의 언약관계에서 비밀인 것입니다.

 

 

이 문지방을 엡2:12 -13절에 말씀하시기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절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 졌고 14'둘로 하나를 만드사' 문지방에 피를 뿌릴때 이 피로 언약이 성취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이 나타나 원수들이 진멸되고 우리 안에서 생수가 터지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18절 결혼을 통해서 우리가 성령안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린양의 피를 문지방과 문설주에 뿌리고 발라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이어서 하도록 하고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우리는 말씀의 본질을 놓치고 허상을 쫓아갈 때가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본질을 알고 문지방인 우리의 배에서 성령의 생수가 흐르는, 더 진실하고 신실한 그리스도의 제자되어, 이제 그 새로운 생명은 생명의 성령의 생수가 강물처럼 흐르게 되어 예수님과 한 몸 이루고 천국을 소유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출처 : 다윗과 시편 연구소 참조)

http://davidnpsalms.org/bbs/view.php?id=jyh&page=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