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사람의 연수를 70세로 보았다 (시 90:10).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나이 이전에 죽었지만 예외적인 사람들도 있었다. 죽음은 의식문이 사용되는 마지막 사건이다. 초기 이스라엘 역사에서는 죽음 이후의 삶을 분명하게 지적한 적이 없었다. 부모들은 자기의 자녀들에 의하여 그들의 삶이 계속 이어진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저자는,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을 때 이미 레위가 있었고, 따라서 레위는 결국 예루살렘 왕에게 십일조를 바친 것이라고 말 할 수 있었다 (히 7:9-10)

사람들은 죽어서 지하세계 (스올)로 내려간다고 믿었다. 다니엘 시대까지도 영벌이나 영생을 위한 부활이 있게 될 것이라는 계시가 없었다 (단 12:2). 예수께서 모든 신자들에게 천국을 열어놓고 죽은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실 때까지 어느 것도 분명해진 것은 없었다 (고전 15:20).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의 소망이 오직 이 세상에 국한되기 때문에 가장 불쌍한 자들이었다.

사람이 죽고나면 곧바로 곡과 애도의 기간이 있었다. 곡은 이웃사람들에게 죽음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첫 번째 유월절에 애굽사람들은 너무도 많이 죽어서 그 곡하는 소리가 전국에 울려 퍼졌다. 가족들은 애도를 위하여 모여들었다. 미가는 그러한 애도의 소리가 들개와 타조가 우는 것같다고 하였다 (미 1:8). 예수께서 야이로의 딸을 일으키려고 가버나움 회당으로 가셨을 때에도 큰 애도의 소리가 있었다 (마 5:38). 다윗의 압살롬을 위한 애도는 유명하였다. 부자들은 애도하는 일을 전문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을 고용하기도 하였다 (렘 9:17-18; 암 5:16). 애도할 때에는 스스로 불편하게 하기 위하여 염소털로 만든 옷을 입었다. 가슴을 치기도 하였고 (눅 23:48), 지나친 슬픔을 표현하기 위하여 옷을 찢기도 하였다 (삼하 3:31).

사람이 죽으면 곧 매장을 하였다. 이런 관습은 날씨가 덥기 때문에 시체가 곧 부패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안식일이나 절기에는 매장을 하지 않았다 (요 11:39; 19:31). 매장하기 전에는 시신을 물로 씻어내고 세마포로 느슨하게 감았다. 시신은 나무로 만든 들것에 실려 매장지로 옮겨졌다 (눅 7:14). 시신은 자연 동굴이나 인공으로 만든 굴(무덤)에 매장되었다 (창 49:29-32; 삿 8:32). 사람들은 자연 동굴을 넓혀서 시신을 놓기 좋게 벽감(niche)이나 선반들을 만들었다. 동굴의 숫자는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시신이 부패하게 되면 뼈만 옮겨서 돌로 만든 항아리에 넣어 두었다. 이러한 항아리들은 구석이나 벽감에 보관하였다. 무덤의 입구는 둥근 형태의 돌로 막아 두었다. 매장지는 이곳이 무덤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하여 희색으로 칠해 졌었다 (마 23:27). 살아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과 접촉한 후에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었다.

매장 방법으로 사용된 다른 형태는 관을 땅바닥에 놓고 시신 주위에 둥근 돌을 장방형으로 둘러쌓는 것이다. 그리고 시신은 흙으로 덮었다. 이 때 시신 주변에 쌓아 놓았던 돌들은 무덤의 경계를 만들어 준다. 그와 같은 매장은 땅의 견고함 때문에 일반화되지는 않았다. 공동 묘지는 마을이나 도시의 외곽지역에 있었다 (눅 7:12). 왕실만이 도시 안에 무덤을 쓸 수 있었다 (왕상 2:10).

http://bibleland.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