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당> 신약성서배경사, 에두아르뜨 로제, 184쪽 참조.

회당의 시초는 분명하지 않다.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이 정복된 후

바빌론으로 잡혀가 유배 생활을 해야 하였던 유대인들이

하느님의 말씀과 계명을 들을 수 있는 장소를 세웠다고 생각되었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더 이상의 정확한 보도는 없다.

첫 번째로 확실한 증언은 그리스도 이전 3세기에서 유래한다.

그때 이미 이집트의 디아스포라에 회당이 있었다.

기원전 2세기에는 안티오키아에 회당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므로 회당의 기원은 유대인들이 다른 신앙을 가진 민족들 가운데

흩어져 살았던 디아스포라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고국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있던 그들은 타향에서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일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야만 했었다.

회당 제도는 디아스포라에서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에서도 신속하게 설립되어 갔다.

그래서 예수님의 시대에는 유대인들이 사는 모든 마을에 회당이 세워졌다.

대도시에는 몇 개의 회당이 있어 거기서 하느님께 예배를 드렸으며

율법이 가르쳐지고 어린이들이 교육을 받았다.

회중들이 함께 모였던 회당 건물은 대개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는 긴 장방형의 집으로 건립되었다.

입구에는 물이 든 대야가 놓여 있어서 회당에 들어가려는

모든 사람들이 의식적인 정결을 행할 수 있었다.

기도실은 수수하고 단순하였다.

한쪽 벽에는 두루마리가 보관되어 예배 때 꺼내어 사용하였다.

회당은 각 지역에서의 유대 공동체를 유지, 보존시키는 데 공헌하였다.

세 명으로 구성된 회장단이 회당 공동체의 외적사무를 관할하였다.

회당의 직원으로는 단지 관리인과 소사만이 있었다.

공동체의 명망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선출된 회당 장은

예배드리는 책임을 맡았으며 집회의 과정이 율법에 따라서

수행되고 있는지를 주의하여 감독하였다.

그는 기도를 인도하고 율법을 낭독하는 직무를 수행해야 할

사람들을 정해서 참석자들을 권고하여 적절한 설교를 하게 하였다.

회당 지기는 두루마리를 가져가고 회당관리인으로부터

기도와 찬양, 그리고 설교를 하도록 선발된 공동체 회원들에게

그들의 직무를 수행하도록 요청하였다.

만일 율법을 범한 공동체 회원에게 채찍 태형과 같은 형벌이

내려질 때는회당지기가 이를 집행해야 하였다.

태형의 수는 40회를 규정한 신명기 25장 3절의 규정을

어떠한 경우에도 어기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39회 이상을 넘길 수 없었다.

회당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기 위해서는 적어도 10명의 남자가 출석하여야 하였다.

예배의 과정은 두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 부분은 의식적인 면이 더욱 강하고 두 번째 부분은 교훈적인 면이 강하다.

사람들은 먼저 “들으라, 이스라엘아”라고 말한다.

이 말을 유대인들은 매일 아침과 저녁에 이스라엘의

한 분이신 하느님께 드리는 신앙 고백으로서 낭송한다.

이 신앙 고백은 세 개의 문절로 이루어졌다.

그것들의 정확한 구분은 기원 70년 이후 학자들에 의하여 최종적으로 확립되었다.

첫 번째 절의 시작에 의하면 그 신앙 고백은 “들으라”라는 도식으로 표현된다.

“들으라, 이스라엘아,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너의 모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여야 한다.”(신명기 6,4-9)

이러한 규정들은 문자적인 계명으로 이해되었다.

사람들은 그 도식의 낭송과 기도를 할 때 경패라는 것을

이마와 손에 붙였으며 문설주에는 상자(mezuza)를 굳게 매달았다.

찬양으로 낭송이 시작되고 끝맺는 “들으라, 이스라엘아”에 이어서

소위 18기도문이 뒤따른다. 이 기도는 열여덟 개의 간구로 이루어졌으며

원문 텍스트의 한 부분 속에서 이미 예수님의 시대에 확고한 위치가 주어졌다.

기도의 본래적인 중심부는 언제나 3개의 찬양으로 둘러싸여 있다.

처음과 마지막의 세 말은 하느님을 찬양하도록 부른다.

1Benediktion 당신은 찬양을 받으실 주 우리 하느님,

그리고 우리 선조들의 하느님,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크고 강하시며 두려운 하느님, 지존하신 하느님,

하늘과 땅의 창조자, 우리의 방패이시며 우리 선조들의 보호자,

모든 종족 가운데서 우리의 신뢰자가 되십니다.

아브라함의 보호자가 되신 당신은 찬양을 받으실 지어다.. 아멘.

2Benediktion 당신은 용사이십니다. 높은 자와 강한 자를 낮추시고,

권력자를 심판하시며 영원히 살아 계셔서 죽은 자들을 일으키시며,

바람을 불게 하시고 이슬을 내리게 하시며,

살아 있는 사람들을 먹이시고 죽은 자들을 살리십니다.

한 순간에도 우리에게 도움을 베푸십니다.

죽은 자들을 살리시는 주님, 당신은 찬양을 받으실 지어다. 아멘.

3Benediktion 당신은 거룩하시고 당신의 이름은 두려우며

당신 외에는 하느님이 없습니다. 주 거룩하신 하느님,

당신은 찬양을 받으실 지어다. 아멘.

기도의 중심부를 이루고 있는 12간구는 한편으로는

매일 매일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과 관련되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자비가 표출되기를 바라는 메시야 시대와 관련되었다.

6Benediktion 우리의 아버지시여, 우리를 용서하소서.

우리가 당신께 범죄 하였나이다.

당신의 눈앞에서 우리의 과오를 도말하시고 제거하소서.

당신의 자비가 크니이다. 무한히 용서하시는 주님,

당신을 찬양을 받으실 지어다. 아멘.

9Benediktion 주, 우리 하느님이시여, 우리를 축복하소서.

금년에 우리들의 모든 경작지에서 곡식을 풍요하게 하시고

속히 구원의 해를 가져오소서. 그리고 이슬과 비를 땅에 내리시고

당신의 선하심의 보화로 세상을 풍요하게 하소서.

또한 우리들의 손으로 행한 일에 축복하소서.

금년을 축복하신 주님 당신은 찬양을 받으소서. 아멘.

기원후 1세기 말에 교회와 회당이 결정적으로 분리될 때

12축복 기도는 다음과 같은 형태를 갖게 되었다.

12Benediktion 배교자들에게는 희망이 없게 하소서.

당신은 거만한 통치권(로마)을 우리들의 시대에 속히 멸절하소서.

그리고 나자렛파들(유대 기독교인들)과 유대의 이교도들을 속히 망하게 하시고,

생명책에서 지우시고, 의로운 사람들과 함께 기록되지 않게 하소서.

오만한 자를 거꾸러뜨리시는 주님,

당신은 찬양을 받으실 지어다. 아멘.

회당의 예배에서 그리스도교 인들에게 이런 저주가 내려짐으로써

그리스도교 인들은 완전히 유대인 공동체에서 배척되었으며

회당에 들어오는 것 역시 어렵게 되었다.

기도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세 개의 기도는 그 내용이

다른 것에 비하여 더욱 일반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마지막 세 개의 찬양 사이에 민수기 6장 24-26절에 따른 사제의 축복기원이 있다.

만일 회당의 예배에 사제가 참석하였다면 그는 축복을 기원해야 하였다.

그러나 만일 사제가 없었다면 축복은 한 회원에 의하여

하느님을 향한 간구의 형태로 기원되었다.

공동체 회원들은 또 아멘으로 응답하였다.

그리고 그 기도는 다음과 같은 마지막 축복 기도로써 끝났다.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과 당신의 성읍과 소유물 위에 당신의 평화를 주소서.

우리 모두를 축복하소서. 평화를 수립하시는 주님,

당신은 찬양을 받으실 지어다.”

예배의 교훈적인 부분은 성서를 읽고 해석하는 것이다.

토라, 즉 구약성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모세의 다섯 책을 낭송하는 강독에 있어서

점차적으로 하나의 특별한 결론을 맺게 되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해(年)의 운행에 따라 율법의 장절을 나누었다.

모든 유대인 남자는 예배 때에 앞으로 나가서 성서를 낭송할 수 있었다.

암기하여서 낭독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왜냐하면 율법의 원문이 결코 변화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율법을 읽은 후에는 예언서에 대한 강독이 이어졌다.

수식적인 해석은 일와와 우화, 그리고 구상적인 묘사와 결합되었다.

율법의 해석은 다른 성서 구절과 결합되거나

유명한 율법 학자들의 생활에 대한 언급과 결합되어서 더욱 풍요해졌다.

낱개의 책으로 모졌던 성서 해석에 관한 광범위한 전승은

소위 미드라쉼(Midraschim, 연구 혹은 해석) 안에서 문헌적인 침전물을 찾아냈다.

첫 번째 미드라쉼은 랍비들에 의하여 기원후 2세기에 기록되었고

그 다음 수백 년 동안에 이러한 종류의 풍성한 문헌이 생겼다.

교육의 장소로서 회당은 동시에 학교였다.

그래서 회당은 다양하게 학당이라 불리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