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rning 애도

유대인들의 애도하는 것은 장례의 슬픔을 감소시키도록 몇몇 기간으로 나뉘어져 있다. 상을 당한 사람들이 비관적인 표현을 해도 되며, 정상적 생활로 돌아가기까지 애도 기간에는 슬픔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게 되어있다.

가까운 가족(부모, 형제, 배우자나 자녀)이 먼저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첫 슬픔의 전통적 표현으로 옷을 찢는다. 부모께서 돌아가셨을 때에는 심장 있는 부분을 찢고, 다른 친척일 때에는 오른편을 찢는다. 이렇게 옷을 찢는 것을 ‘케리야’ (keriyah’ "tearing")라고 한다. 애도자는 가족의 생명을 취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참된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그리며 축복문을 읽는다.

죽음에서 장례까지, 애도자(고인의 가족을 말함)의 외로운 책임감은 고인과 장례 준비를 위한 것이다. 이 기간을 ‘아니눗’(aninut)이라 한다. 이 기간 동안 애도자들은 모든 긍정적인 율법에 대하여 지키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애도가 모든 것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보통 이 기간 하루나 이틀이다. 유대교에서 장례는 신속하게 처리한다.

이 아니눗 기간 동안 가족은 외로이 남아 슬픔을 충분히 표현하도록 한다. 또한 이 기간에 추모객들은 전화를 하거나 방문해서는 안 된다.

매장한 후 가까운 가족이나 이웃 또는 친구들이 애도자들을 위해 처음 식사(the se'udat havra'ah; 추모객의 식사)를 준비한다. 전통적으로 이 식사는 계란(생명의 상징)과 빵으로 되어 있다. 식사는 그 가족들만을 위한 것고 추모객들을 위한 것은 아니다. 이런 순서 이후에는 추모객들이 전화를 해도 된다.

애도 기간 이후는 쉬바(shiva, ‘일곱’, 7일간이기 때문이다). 쉬바는 고인의 부모, 자녀, 배우자 그리고 형제들이 되도록이면 고인의 집에 모두 모여 지킨다. 쉬바는 매장한 날 시작되며 이후 7일간 계속된다. 애도자들은 일반적인 의자 대신에 등받이 없는 낮은 의자나 바닥에 앉고, 가죽으로 만든 신을 신지 않으며, 이발하거나 면도도 하지 않는다. 화장도, 일도 안 하며, 안락이나 기쁨을 위한 것도 하지 않고, 목욕, 성관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거나 토라도 공부하지 않는다(슬픔과 애도와 관련된 토라는 예외이다). 애도자들은 사망소식이나 장례식 때에 찢은 옷을 입고 있다. 집안에 있는 거울은 덮어 가린다. 기도 예식은 쉬바 중에 있으며, 친구, 이웃과 친척들이 모여 ‘미니안’(minyan, 10명이 모여야 한다.)을 위한 정족수를 채운다.

애도 기간 중에 축제가 시작되어 겹칠 때면, 애도를 멈춘다. 그러나 만약 축제기간 중에 상을 당하였다면, 애도는 축제기간 뒤로 미뤄진다. 쉬바기간에 안식일이 있어도 7일 중 하루로 계산하고 애도 기간을 끝내지 않는다. 이 기간 중 모든 사람이 애도하는 행위(찢어진 옷을 입거나 신을 신지 않는 것)는 연기되고, 개인적으로 하는 것은 계속 할 수 있다.

다음 애도하는 것은 30일, 즉 ‘쉴로쉼’(shloshim, 매장 후 30일이기 때문이다.)이다. 이 기간 동안 애도자들은 파티나 축하연에 참석하지 않고, 이발이나 면도, 그리고 음악을 듣는 것도 금한다.
마지막 공식적인 애도는 ‘아벨룻’이다. 이것은 부모님을 위해서만 하는 것이다. 이 기간은 매장 후 12개월이다. 그때에 애도자들은 파티, 축하연, 공연이나 콘서트에 참석하지 않는다. 매장 후 11개월 동안 고인의 아들은 애도자의 카디쉬(kaddish, 애도자의 기도)를 매일 읽는다.

아벨룻 이후 모든 것이 마쳐지며, 고인의 가족은 공식적인 애도기간이 끝난다. 그러나 고인을 추모하는 몇 가지가 남아 있기도 하다. 매년, 추모 1주년 가족은 고인의 ‘야흐르쩨잇’(이디쉬어, ‘1주년’)을 지킨다. 야흐르쩨잇 때에 아들들은 카디쉬를 읽고 가능하다면 회당에서 ‘알리야’(aliyah, 토라 읽기를 축복함)를 한다. 그리고 모든 애도자들은 고인을 기리며 24시간 초를 밝힌다. 게다가 대속죄일, 슈미니 아쩨렛, 유월절 마지막날, 그리고 맥추절 예식에서 회당에서 하프타라 읽기가 끝난 후 ‘이쯔코르’(“그가 기억하기를……”)라는 애도자의 기도를 읽으며 끝맺는다. 야흐르쩨잇 촛대는 이런 날들에도 켜둔다.


애도자를 방문하는 손님들은 상투적인 표현이나 진부한 것으로 슬픔을 표현해서는 안 된다. 손님은 애도자가 먼저 말을 걸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고인에 대한 이야기에서 화제를 전환해서도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애도 기간의 목적인 애도자의 슬픔을 표현하는 것이 제한 될 수 있다. 반면에 전화하는 사람들은 고인에 대한 대화를 더 하도록 도와야 한다.


상가를 떠날 때에 손님들은 전통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당신과 예루살렘과 시온의 모든 애도자들에게 위로를 주실 것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 검색

자료 번역 : http://www.jewfaq.org/death.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