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6.23주일설교 

사방을 보라 ( 사49:14-19)

 

지난 18일 미국 국방부 청사에서는 척 헤이글 미국 국방 장관과 안호영 주미한국대사 그리고 6.25전쟁에 참여한 30여명의 백전노장들이 모여서 6,25의 한국전 개관식을 가졌다고 합니다. 거기에 한국 전시관이 개관되었는데, 거기에 1950-953년 “잊혀진 승리( forgetten victory)“라고 문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미국 국방부의 한국전 휴전 60주년 기념위원회의 데이비트 클라크 대령은 “? 이제 보니 한국전은 패배한 전쟁이거나 교착상태로 끝난 게 아니라 승리한 전쟁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미국은 오랬동안 6.25의 전쟁은 잊어졌습니다. 그래서 잊혀진 전쟁 ( FORGETTEN WAR) 였습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전쟁에 참여했다가 승리하지도 못하고 3년 동안 질질 끌다가 불명예스럽게 돌아간 전쟁, 그래서 잊어 버리고 싶은 전쟁이었습니다. 그런데 60년을 놓고 뒤를 돌아 보니 잊혀진 전쟁이 아니라 잊혀진 승리라는 것입니다. 미국이 이제 까지 전쟁에 참여하여 대한 민국처럼 성공한 나라가 없습니다. 전쟁의 잿더미에서 대한 민국처럼 경제 성장하고 민주주의가 성장한 나라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전쟁을 잊어버리고 싶은 전쟁이 아니라 잊혀진 승리를 기억해내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대한 민국은 그들이 동맹국가로 기억하고 모범적인 사례로 유지하고 싶은 것은 것입니다.

이를 보면서 이 기사를 읽으면서, 저에게는 그런 생각이 났습니다. 2004년은 잊어버리고 싶은 한해가 아니라, “잊혀진 승리의 시작의 한해라는 것입니다. 그‘때의 그 사건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교회가 지어졌고, 오늘날의 승리였다고 말할수 있을 것이라고 보아집니다.

신앙생활을 마귀와 전쟁의 시간들입니다. 조금 삭막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신앙생활을 싸움의 연속입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했더니, 부부간에 싸움이 시작되었고, 친구 간에 싸움이 시작되었고, 사회에서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런 말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이 시작되면, 옛날의 나와 하나님 믿는 사람으로서 나가 싸움입니다. 옛날의 나는 적당히 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대충대충살고 노력하지 않고 좋은 것을 바라고, . 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자기 관리, 자기 조절, 자기 커트롱을 잘합니다. 그래서 성실과 정직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이것은 부단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둘째는 신앙생활 하기전의 나는 세상의 향략을 좋아했습니다. 육신적으로 기쁨의 되는 것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나는 세상의 기쁨보다는 성경읽기를 좋아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성경 붙잡고 기도하기를 좋아합니다. 말씀대로 성취해보려고 합니다. 이것이 세상과의 싸움입니다.

세 번째는 영적 전쟁입니다.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 전쟁은 상관이 있고, 충성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가? 아니면 내 자신을 위하여 사는가, 나 자신을 위하여 사는 것을 마귀가 제일 좋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것을 신앙생활의 전부입니다. 이 두가지가 마음 속에서 늘 전쟁입니다. 이런 3가지 전쟁은 일반 세상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이런 전쟁이 일어나는 현상이 바로 , 갈등이요, 불안이요, 불안정입니다. 평생 이런 전쟁이 우리에게 일어 날때마다 전쟁하기 싫습니다. 전쟁이라는 사실을 잊어 버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잊혀진 전쟁이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결국에는 승리하는 것입니다.

오늘 6.25의 60주년을 맞이 하면서 우리 모든 인생을 싸움의 연속이라는 것을 기억할 수 있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런 전쟁이 내 마음속에 일어나고 있는 동안 하나님은 무엇을 하실까 궁금할 수 있습니다.

 

1. 나를 기억하고 계십니다.

이사야 49:14절 저가 읽고 15절은 여러분이 읽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15절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 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는 사는 것이 힘들 때마다 나 혼자만 힘들게 고생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뒤돌아 보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있습니다. 세상만 바라볼때 이 무한 경쟁이 정글과 같은 곳에 버려져서 혼자서 살아볼려고 바둥바둥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지켜 보고 있습니다. 항상 쳐다 보고 계십니다.

 

신명기 32:10에 보면 하나님의 지켜 주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며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눈동자는

사람에게서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서 조그마한 징조에도 눈을 깜빡깜빡 하면서 잘 킵니다. 그렇게 보호하듯이 나를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못된 짐승도 감히 접근하지 못하도록 지켜 보고 계십니다.

다윗은 목동이었습니다. 목동들은 양을 몰고 다니는데, 수많은 양들을 돌보는데, 다 그냥 돌볼수 없습니다. 그래서 양목에다가 목거리를 달고 다니게 합니다. 그리고는 목동의 손에는 막대기와 지팡이를 들고 다닙니다. 막대기는 짧은 것이요, 지팡이는 긴 것입니다.

양들은 보통 한꺼번에 때를 지어 다니는 공동체적 성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한두마리는 돌연 변이가 있습니다. 양같지 않은 양입니다. 이런 양은 항상 공동체를 생각하지 않고 혼자서 생활하기 좋습니다. 왜냐하면 혼자 다니면 꼴을 빼앗기지 않고 혼자서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혼자 다니다 보면 유난히 소가 먹는 풀이 풍성한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 보면 항상 위험한 요소가 있어서 다른 양들이 접근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풀이 많은 것입니다. 그런줄도 어떤 양들은 갑자기 먹을 풀들이 많으니 계속 먹는 것만 몰두해서 자기가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을 모릅니다. 이때 목자는 멀리서 풀을 뜯어 먹는 것을 보면서 몇 번이나 싸인을 보냅니다. 그래도 그양은 목자를 보지 않고 계속 풀만 뜯고 있습니다. 이제 조그만 더 그대로 두면 고랑창이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찰나 양을 긴 막대기를 가지고 양의 목에 걸어서 양을 건져 내는 것입니다. 그때 정신을차린 양은 자기가 계곡에 빠져 죽을 뻔한 생명을 건져 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목자는 한손에 지팡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참가는데, 너무 날이 더우면 양들이 그냥 주저 앉아 버립니다. 이때 목자는 한손에 잡은 지팡이를 가지고 조금만 더가자 조금만 더 참으면 시냇물이 나온다. 그렇게 격려합니다. 그래서 목자의 손에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는 안전한 곳으로 보호하시는 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시를 쓸 때 우리 주님이 지팡이와 막대기를 나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시는 구나,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기독교에는 두 가지 도구가 있습니다. 하나는 의롭게 사는 것입니다. 또하나는 긍휼을 배풀며 사는 것입니다. 너무 긍휼이 심하면 의롭지 못하고 너무 의를 주장하면 긍휼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너무 의로운 사람은 인정머리가 없고, 너무 인정과 사랑을 강조하는 사람은 무질서하고 버르장 머리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로 큰 고통을 받게 됩니다. 이러할 때 우리 주님은 이 두가지를 적절하게 사용하여 우리를 지키십니다. 절대로 우리는 버린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부르시면 오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나의 모든 것을 기억하시고 언제든지 지켜 주십니다.

 

2, 시간을 기억하십니다.

행1:7에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아니요,

나의 기도응답이 언제 이루어 집니까? 그날과 그시는 오직 아버지만 아십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그렇게 기도합니다. 시편 90: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알게 얻게 하소서.

하나님의 시간표를 알게 해주세요. 하나님의 시간이 다가옴을 깨닫게 해주세요.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시간을 정확하게 지킵니다.

창세기 15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에굽에 가서 고생한다고 말합니다. 종노릇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시간이 약 400면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창15:16절에는 네 자손은 4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스라엘 백성이 4대만에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400년만에 돌아 온가는 것입니다.

야곱이 레위아들을 비롯한 70명과 함께 갔는데, 레위, 고핫, 아므람, 모세때와서 만4대만에 이스라엘 땅에서 빠져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때가 40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것입니다.

광야생활을 40년 한다고 말할 때 40년의 시간을 광야에서 보냈습니다. 그런가 하면 바벨론에서 70년만에 고향에 돌아 온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래서 606년에 잡혀가서 536년에 돌아왔습니다. 성전 파괴가 586에 성전이 파괴되었고, 516년에 스릅바벨 성전이 완공되었습니다. 어느 쪽을 보아도 70년의 세월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그 시간을 지키셨습니다.

그러기에 나의시간표를 알고 있는 우리 주님은 정확하게 지키시기에 더딜지라도 기다리며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시간표를 모르면 이 나의 고통의 시간이 언제면 끝나나? 고민하실 것입니다.

욥은 시간이 빨리 가기를 기다렸습니다. 이 고통의 시간이 빨리 가서 빨리 이고통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마치 일용직 노동자가 봉급날 기다리듯이 그날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마치 종이 하루일이 끝나는 퇴근시간을 기다리듯이 기다린다는 것이다. 내가 누울때면 말하기를 언제나 일어날꼬? 밤이갈꼬 하며

새벽까리 이리뒤척 저리뒤척하는 구나(욥7:7)

 

고통의 시간이 끝납니다. 그 시간을 정확하게 주님을 알고 있습니다. 틀림 없이 그날을 지키실 것입니다. 우리는 정확하게 몰라도 고통의날이 끝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말합니다. 그 가지가 연하여 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가이 곧 문앞에 이른 줄 알라(마24:32) 라고 말합니다. 그언제 고통이 끝나는 가? 정확하게는 앐후 없지만 기도하며 준비하는 자에게는 그날이 다가옴을 압니다. 나무에 가지가 연해 집니다. 잎사귀를 냅니다. 잎사귀가 무성합니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가을이 가까울 징조이며, 추수때가 온다는 것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날씨가 더우면 더울수록 열매가 더 맛이 들겠구나 생각하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때가 오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면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케 하리라( 사49:8)

 

3.그날을 기다리려 길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사40:3-4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 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안케 되면 험한 곳이 평지가 되리라.

 

우리 하나님이 오실길을 시원하게 뚫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지난날에 목회 생활을 거듭 돌아 보면서 준비가 너무 중요하구나 하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훈련을 많이 받아서 사랑할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정직하고 의롭게 깨끗하게 행동을 관리하여 곧바르게 살 준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길이 시원하게 뚫려야 합니다.

그래서 깨달은 것은 인생의 로드맵이 있어서 길이 환하게 뚫여있어야 하겠다. 생각하고 인생의 길을 찾는 사람들에게 길을 환하게 뚫어주는 것이 나의 사명이 라는 생각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며 묵상하는데, 갑자기 저의 머릿속에 교회앞에 길이 구부러진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지도를 보게 되었는데, 우리 교회 앞의 길이 환히 뚫린 길을 마련하려고 원래 길을 준비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 지을 때 2미터 양보하고, 반대편도 2미터 양보하면 10미터 도로가 훤하게 뚫리도록 계획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서울 에스에이치 공사가 마곡 지역을 정리하면서 그만 그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작년에 길을 없애 버렸습니다. 저가 혼자가 싸워서 겨우 작은 골목길을 내주었습니다. 전기를 내어 달라고 하니 조금 전기를 주었는데, 서울이 아니고 어느 산골짝의 골목길 같아요 . 그래도 참았는데,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요.

그래서 교회앞도로 방화대로 44번 길을 원래 상태로 원하게 뚫어주세요. 그리고

그리고 방화대로 34번길도 일부를 없애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길도 없애면 안됩니다. 강하게 주장하여 원상태로 회복하여 우리교회 오는 길이 시원하게 뚫리도록 일어서야 하겠다 하고 결심했습니다.

하나님 만나는 길이 삐딱하면 안됩니다. 꾸부러지면 안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려면 다른 것 다 준비되어도 마지막에는 그 축복이 들어올 통로가 확실하게 준비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한 막바지 준비가 필요합니다.

 

4. 거룩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눈을 열어야 합니다

18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로 장식을 삼아 몸에 차며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신부와 같은 예쁜 사람들이 예쁜 장식과 예물을 가지고 사방에서 이곳에 모여 든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 어떤 때는 잠이 오지 않습니다. 성경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붙잡고 마음을 준비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길을 여시고 사람을 준비하시고 축복의 예물들이 몰려 들도록 역사하십니다.

저가 성경 공부하는 분들에게 말합니다. 열심히 쐬가 빠지게 일한다고 축복을 받거나 잘사는 것은 아닙니다. 축복을 받으려면 3가지가 중요합니다. 3가지만 확실하게 잘 사용할 준비하면 물질의 축복과 영적인 축복을 받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하면 눈, 귀, 입입니다.

1)눈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원방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워 올 것이라 그때에 네게 보고 희색을 발하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열방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그게 보여야 합니다( 사60:4). 눈이 보배입니다. 눈이 보여야 합니다. 그래서 영적이 눈을 열어 주소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2) 귀가 중요합니다. 귀로 축복의 이야기 할 때 들려야 합니다. 다른 소리를 들으면 안됩니다. 꼭 들어야 할 복음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옜날의 어떤 광고가 있었습니다. 이소리도 아닙니다. 저소리도 아닙니다 꼭 들어야 할 소리를 잘 들어야 합니다. 물론 잘 들으려면 잘듣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겠지요. 솔로몬은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게 해주세요. 기도했습니다. 그냥 한두번 하다가 만 것이 아니라 일천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듣는 마음을 주세요. skill to listen 그랬더니, 부와귀와 제물을 다 주셨습니다. 기도는 이렇게 엄청난 역사가 일어납니다.

3) 입입니다. 이 입술로 무슨말을 하는가 하는 것이 축복의 시작입니다. 입으로 축복을 가져오고 입으로 저주가 들어 옵니다. 그래서 입술의 훈련을 잘해 할 것입니다 .입으로 축복을 선포하면 그대로 됩니다. 입으로 창조적인 신앙을 말하면 창조적인 일들이 모입니다.

그래서 이세가지는 항상 가장 중요한 얼굴에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부분에 잘 보이도록 달아 매어 두었습니다.

이 세 가지가 바로 축복의 통로입니다. 어렸을 때는 견학을 많이갑니다. 견학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보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보는 훈련이 중요합니다. 가만히 보면서 배우면 그시간이 영적이 축복이 많습니다.

한때 박주영하면 축구 선수로 유명했습니다. 청소년 시절에 어린 나이에 나이 답지 않게 축구를 잘했습니다. 특히 꼴을 넣으면 기도하는 세레머니를 하여 믿는 사람들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그가 청년이 되어서도 많은 골을 넣어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한 그도 어떤때는 골이 들어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겸손하게 어떻게 하면 골이 들어 갑니까?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견학을 하면서 남이 골넣는 것을 보면서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주전 맴버로 뛰지 않고 경기를 견학하도록 관중석에 남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가 골을 넣을때는 신이 나서, 운동장을 바라보는 것이 좋지만, 관중석에 앉아서 남이 공넣는 것은 싫습니다. 그래서 그만 셀타비고 선수로 뛰지 못하게 되었고, 관중석에서 관람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기 규정을 어겼다고 하여 벌금을 물게 되었고, 그 벌칙 때문에 보너스가 깎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 우리 샐타비고에서 밀려나서 유럽 의 변방의 리그의 클럽에 가든지 아니면 k 리그에 복귀해야 하는 기로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물론 아직 박주영을 오라고 요청하는 팀은 없습니다.

참으로 아쉽습니다 .그냥 구경하라면 구경하는 것입니다. 보는 것도 실력입니다. 보는 실력을 준비해야 합니다. 보는 것, 듣는 것, 말하는 것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준비되면 하나님은 크신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우리 교회는 눈귀잎을 열어 주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할 것입니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귀가 열리고 눈이 열리고 잎이 열리게 하옵소서 이 세가지가 열린 사람은 미래라는 바다라를 향해 힘차게 항해하여 원방에 나가서 은금을 실고 오는 축복의 통로가 되가 하옵소서 기도할 것입니다.

이번에 교회 완공을 하면서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래드마크 두가지를 주셨습니다.

여러분 동의.하시는 지 보세요.

1) 오른 쪽에 보면 큰 기둥같은 것이 서있어요.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이 들어 저요.

저는 그것을 보았을 때 눈이 반짝 뜨였어요.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저렇게 크게 들어 쓰시겠구나. 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이름을 리틀 골리앗 클레인이라고 지어 봤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요

클레인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5000년의 대한민국의 역사가 이렇게 성장한 것은 물리적으로 보면 바다를 잘 이용한 것입니다. 세계의 역사를 이끌어온 무대는 바다입니다. 지중해, 대서양, 지금은 태평양입니다.그래서 바다가 깊어야 하고, 깊은 바다를 이용하여 큰 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장소가 어딘가 하면 우리나라에 울산 앞바다.거제 앞바다.기타 등등의 동쪽 바다와 남쪽 바다입니다. 그래서 그 바다를 이용하여 공장들이 들어 오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동쪽과 남쪽이 잘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못 생각하면 영호남 지역싸움이 있어서 정치인들이 영남쪽에만 공장을 몰아 지어서 그쪽만 발달 해서 그쪽만 지역 발전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근본은 그렇게 않고 바다가 남쪽과 동쪽이 깊어서 그곳을 이용하여 산업 활동을 할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배를 크게 지어야 하는데, 큰 배를 만들면 중요한 것이 그 큰 배를 들어서 바다 까지 들고 가야 합니다. 그큰 기중기를 무엇이라고 하는 가 하면 골리앗 크레인입니다. 울산과 거제도에 엄청나게 큰 기중기가 있어서 이것이 그큰 배를 끄덕 없이 들어 올려서 바다로 몰고 가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이 바로 우리 교회 왼쪽에 세워진 것입니다. 얼만나 놀랬는지 모릅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에서 눈과 귀와 입이 잘 훈련되어 어떤 세상에 같다 놓아도 축복의 통로되는 사람들은 만들어 서 저 넓은 바다로 내보내는 것입니다. 저들을 그 큰 배들을 만들어서 세상에 보내려면 그들을 들어 바다로 보내는 클레인이 있어야 하는데, 바로 이곳에 골리았클레인을 만들어서 그들로 세상에 보내여서 은금을 아울러 실고 오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눈을 들어 새로운 세상이 전개되고 있는 것을 본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성경만 보면 세상이 보이고, 축복이 보이고,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세상이 보인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오늘 우리 모든 성도들을 통하여 이말씀을 붙잡고 열린 귀를 하나님의 축복을 보면서 이축복의 역사가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