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07 새벽이슬 마태복음 11-13 하나님 나라의 청사진

 

11장은 왕권에 대한 도전을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소경이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이 사역을 예언자의 사역(29:18, 5:12, 35:1:61:1)을 완성 하는 사역이다.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면 부드러운 옷입은 자들이더냐아니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그게 아니라 요한을 보러 온 줄 안다. 그 요한은 여자가 나은자 중에 제일 큰 자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가 요한 보다 크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만큼 좋은 위치에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흔들림 없이 왕권과 그의 제자훈련을 통하여 축복의 위대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아니하고 애곡하여도 가슴을 치지 아니하는도다. 왕되신 예수의 말을 거역한 고라신, 벳새다를 저주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을 사랑하시기에 초대하고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12장은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논쟁을 하고 있다. 1)안식일에 일하심이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밀밭사이로 지나가시는데, 시장하여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먹었다. 이는 안식일에 이삭을 자르는 것은 추수요, 또한 손바닥사이에서 문지른 것은 타작이요. 겨를 까부른 것은 키질이다. 이때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시오, 성전보다 크신 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안식일에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라고 단언하셨다. 2) 안식일에 치료하신 일이다. 회당에 도착하셨을 때 까지 첫 번째 논쟁이 그치지 아니했다. 그런데 거기에 보니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었다. 바리새인들이 그를 송사할 것을 찾다가 의도적으로 그 사람을 성전에 데리고 온 것이다. 그때 예수님은 안식일에 양이 구덩이에 빠진다 해도 건져 주어야한다고 하면서 고쳐 주었다. 그러자 예수를 어떻게 죽일꼬? 하고 공모했다. 또 바리새인들이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데리고 왔다 예수께서 그를 고쳐 주셨다. 이때 사람들은 그가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라고 외치는데, 바리새인은 귀신이 들였다고 정죄했다. 이때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낸 것은 성령을 힘입어 하는 일이요, 제자들에게도 이 권세를 위임한 상태이다. 그러면서 성령을 훼방한자는 용서 받지 못한다는 영적인 말씀을 하셨다. 3) 표적을 구하는 자들에 대한 답을 보여 주셨다. 그동안 표적을 보여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표적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동안의 표적을 부인하고 화끈하게 표적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이것은 믿음이 아닌 시험하는 기적인 것이다. 이때 우리 주님은 요나의 기적을 통해서 사흘만에 부활하실 것을 암시하셨다.

13장은 천국의 비유를 통하여 본격적인 말씀을 하셨다. 1) 씨 뿌리는 비유, 2)곡식과 가라지 비유, 3)겨자씨 비유 4)누룩비유 5) 감추인 보화비유 6)진주 비유, 7) 그물비유를 말씀하셨다.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제자들을 계시하시지만 배척하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기 위해서다. 그리고 나사렛에서 배척당하신 것을 말씀하고 있다.

 

오늘 묵상의 말씀

하늘나라의 권세를 사용하실 때 배척을 당하신다. 어떻게 예수님은 대처하셨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