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08 수요예배   어느 이방인이 사모하는 예수님누가복음강좌 이희만목사 새벽이슬 ( roadmapbible.com)

 

누가는 이방인입니다. 이방인은 유대인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들이요, 유대사회에 버린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 누가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이와 같이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하여 글을 쓰지 않으면 감당하지 못하도록 가슴이 벅찼습니다. 그래서 글을 썼는데, 그게 바로 누가요, 누가 복음입니다.

 

누가가 들은 이야기 중에 예수님이 처음 설교 하신 내용이 무엇인가 하면

4장의 말씀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사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구약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며 그에게 징조가 오는데 4가지입니다. 1,가난, 2 질병, 3. 전쟁, 4. 포로입니다. 4가지는 구약에서 예레미야 , 에스겔이 목을 놓아 외쳤던 내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성경의 말씀을 경홀히 여겼기 때문에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해결하기 위하여 직접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게 성탄이요, 임마누엘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공생애를 시작하자마자 갈릴리 지역에서 복음은 전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왔다고 말씀하시고는 한사람은 이방인 남자, 한사람은 이방인 여자의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방인여자입니다.

4;2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엘리야가 그 중 한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한 여자를 말씀합니다. 여기 한 여자는 과부입니다. 과부는 그 당시로는 여러분이 많지요, 그것도 시돈땅과부입니다. 이방지역의 과부였습니다. 두르와 시돈 땅에 예수님이 오시기 전만해도 잘나가는 도시입니다. 지중헤를 두르 시돈의 앞 정원호수라고 할 정도입니다. 지금 온 세계가 쓰고 있는 영어가 바로 두르 시돈에서 온 언어입니다.

아합 왕이 아내를 그곳의 돈 많은 이세벨과 결혼한 것을 자랑하는 시대입니다. 도시 국가가 너무 잘살면 너무 가난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너무 가난하면 도심지 생활을 하지 못하고 산속에 들어가서 들판에서 목숨을 연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에 사르밧 과부는 시돈에 속한 사르밧 골짜기에서 거주하면서 나뭇가지를 주어다가 계곡의 흐르는 물로 목숨을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엘리야는 이스라엘 땅에 있었는데, 아합 왕에게 수배당하여 죽게 되자 멀리 이방지역으로 숨었습니다. 이방지역의 계속인 두르 시돈의 사르밧 땅의 골짜기에 숨었는데, 거기에 한 과부가 있어서, 떡 한 조각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과부는 내가 먹을 것도 없는데, 남에게 먹을 것을 줄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3년 동안 비가 오지 않으니 모든 것이 말라버렸습니다. 이 과부는 버틸 재간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에게는 마지막 죽을 때 쓸 수 있도록 가루 통에 한웅큼의 가루가 있었습니다. 과부의 마지막 생명줄입니다. 이 가루가 있다고 하니 엘리야는 그것을 가지고 와서 음식을 만들어 나로 떡 한 개를 만들어 먹게 해라. 그리고 나머지는 네와 네 아들을 위한 음식을 만들어 먹으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이 나 여호와를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 ( 왕상 17:4)

 

그 과부는 그 말씀을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그 시간이후로 저와 엘리야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일례로 하신 말씀과 같이 그 통의 가루가 다 없어지지 아니하였더라”(왕상 17;16). 라는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이런 기적이 일어나지 아니했을까요? 왜 유대인에게는 이런 사건이 벌어지지 아니했을까요?

왜 누가는 이런 기적인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많은 사람이 있으나 그들에게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 이방인 과부에게 기적이 일어났다고 강조할까요?

이에 대한 해답은 그 다음 사건인 갈멜산 사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알리기 위해 갈멜산에 국가의 공권력을 가진 바알의 섬기는자450명과 아세라 섬기는 자 400면 도합800명과 엘리야가 대결하는 것입니다. 850:1로 하나님 섬기는 자와 우상 섬기는 자가 누가 이기는 자 힘을 대결하자도 엘리야가 혼자 나섰습니다. 이들 850명은 국가공권력을 가진 자들이기에 국가적으로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혼자입니다. 어떤 사람의 지원도 받지 않고 오직 혼자 나섰습니다.

이 광경을 구경하기 위해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참여 했을 것입니다. 숨어서 보는 사람만 7000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가 모든 백성들을 향하여 외쳤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 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거리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 지니라 ”( 왕상 18:21).

아쉬운 것은 한사람도 대답하지 아니했습니다. 저 공권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신앙을 무시하는 백성 850명을 향하여 한 예언자가 목소리를 외치며 주님 편에 서라고 외치는데, 한사람도 하나님 편으로 방향을 바꾸지 아니했습니다. 외롭게 주의 예언자가 외치건만 응원하거나 하나님 편에 서겠다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주님인 이런 아쉬운 장면을 안타까와하고 있습니다.

행동하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한 알의 밀알을 땅에 심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행동하는 신앙, 말씀을 땅에 심는 자를 통하여 하나님인 기적을 베푸십니다. 교회 오래 다녀도 말씀의 씨앗을 가정에 뿌리지 못하고, 직장에 뿌리지 못하고, 삶속에서 씨앗을 뿌리는 못한 자는 결국 가을이 오면 열매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곧 예수 믿어서 성경도 모르고 교회도 모르지만 말씀에 순종하여 오늘 들을 말씀을 증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주님의 축복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행동하는 양심, 행동하는 신앙, 행동하는 사람을 통하여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사렙다 과부를 통하여 보여 주었습니다.

갈멜산에서 단지 바알신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사람을 위하여 싸운 것 아닙니다. 오랬동안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선민이다, 라고 하면서 행동하지 않는 겁쟁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깨우고자 갈멜산산상에서 외쳤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 왕상18:36)

그러면 아멘 아멘 이라고 외쳐할 것 아닙니까? 한 사람도 안해요,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행동하는 신앙, 행동하는 양심이 되도록 신앙을 회복하여 주옵소서 기도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방인 남자입니다.

27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중에 한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니라.

26절에 가난의 문제를 해결한 것이 이방인 여인이라면, 27절에는 질병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시범을 보인 사람도 역시 이방인 사람 나만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문둥이는 하나님께 저주 받은 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문둥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격리해서 지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들판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병을 낫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을 읽고 말씀대로 살면 아프지 않는다고 성경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너희가 내말을 나의 말을 청종하여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15:26)

이렇게 기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오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수리아 나아만은 하나님께 나왔습니다. 행동하는 신앙을 보였습니다.

 

올해 여름수련회가 731( )부터 83() 까지 대전 헬몬 수양관에서 모였습니다. 그때의 주제가 네 믿음을 보여라 ( 2:26)” 이었습니다.

믿음을 보이라고 강사 목사님들이 시간마다 은혜의 말씀을 주셨고, 저녁에는 회개의 기도가 진지하게 주님에게 올려졌습니다.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2:26)

마지막 날 폐회예배 중에 안성삼 목사님이 어떻게 믿음을 보일 것인가? 믿음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하는 말씀을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를 통하여 말씀을 주셨습니다.

믿음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 하면 나만 회개를 통하여 보여 준다는 것입니다. 나만 회개를 잘하면 믿음을 보여 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회개는 껍질을 벗기는 행동이다.

마치 밤나무에서 밤을 발견했을 때 그 밤을 따먹기 위해 땅에 떨어 드린다. 밤알을 주우려고 했더니 가시가 많아서 그 가시가 있는 껍질을 발로 밟아서 벗겨야 한다. 껍질을 벗겼다고 그냥 먹을 수 없다. 다시 밤알을 가져다가 칼로 껍데기를 걷어내야 한다. 그때 그 안에 벌레가 먹지 못하도록 떫은 맛을 내는 엷은 막이 있다. 그것을 벗겨내어야 한다. 그리고 삶을 때 맛있는 밤을 먹을 수 있다. 여기에 나만도 마찬가지이다. 요단강물에 들어가려면 벗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7번의 껍질을 벗겨 보자는 것입니다.

 

1)지위의 껍질을 벗겨야 한다.

장군의 지위의 군복 , 계급장, 완장, 왕의 친서, 호위부대, 금은 선물의 물질, 다 벗긴다.

2) 자존심의 껍질을 벗긴다.

내 생각에는 식민지의 국가 이스라엘이 정복국가요, 강대국의 장군의 방문에 대하여 거대한 의전 거행함으로 치료의식을 통하여 낫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요단강 물에 들어가서 씻으라고 하니 자존심 상했습니다. 그것도 식민지 국가의 사람이 정복국가의 대 장군에게 이렇게 무시하는 행동을 하지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자존심이 껍질을 벗겨 버렸습니다.

3) 생각의 껍질을 벗긴다.

내 생각에는 요단강의 더러운 물보다는 고국의 다메섹의 아바나 강물이나 바르발 강물이 훨씬 깨끗한데 거기가 좋겠다는 생각을 버려 야 한다. 온천탕이아니더라도, 깨끗한 강물이 나이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계신 곳이니 순종하겠다고 고백하면서 나의 생각의 껍질을 벗겨버린다.

4. 부끄러움의 껍질을 벗어 버리자

장군이 신하를 보는 앞에서 빨가벗고 물에 들어가는 것이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들 보는 앞에서 나의 수치를 다 보여 주기 위하여 빨가벗는 것이 부끄럽지만 그것도 벗겨 버리는 것입니다.

5. 의심의 껍질도 벗겨 버립니다. 아니 약을 바르거나 약을 먹거나 수술해야 낫지 이렇게 더러운 강물에 씻으면 병이 낫냐? 라는 의심의 껍질을 벗겨 버립니다.

6. 낙심의 껍질을 벗겨 버립니다.

6번이나 물어 들어갔다가 나와도 병이 낫지 않습니다. 포기하고 싶습니다. 그만 낙심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껍질도 벗어야 합니다.

7. 최후의 순간에 까지 껍질을 벗겨야 합니다.

마지막까지 사력을 다하여 철저히 순종하겠다는 마음으로 벗기고 물에 들어갔습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순간 왕하 7:14절에 보면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같이 깨끗하게 되었더라.’( 왕하7:14)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그 살이 노인의 살처럼 쭈글쭈글 했는데, 이제는 어린아이 살처럼 보드랍게 되었습니다. 올해 저는 한 살짜리 아이를 안아 줄때가 많이 생겼습니다. 얼굴에 내얼굴을 부벼 보면 얼마나 보드라운지요, 종아리 살을 만져오면 정말 부드러워요. 흠과 티가 없는 어린아이 해맑은 웃음으로 나를 쳐다봐 주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나만은 전쟁을 하느라고 눈에 독기가 가득하고 몸은 에는 죄성이 가득하여 굳어져서 탄력을 잃어버린 살갗이었고, 그런데가 문둥병이어서 헌데가 나서 참아 봐줄 수 없는 자였는데,

깨끗하게 낫게 되어서 행복이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이방인도 하나님께 순종하면 이렇게 행복을 되찾게 되는데 하물며 주님의 자녀인 우리들이야 당연히 이런 축복의 회복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기도하고 싶습니다.

사렙다 과부처럼 쌀독에 쌀이 떨어지지 않고 기름병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은 것처럼 우리 성도들의 지갑에 항상 배추 잎이 떨어지지 않고 신사임당의 그림이 지갑에 항상 넘치는 날이 오게 하옵소서. 나만이 요단강물에 들어갔을 때 피부가 어린아이 살갖을 회복하게 된 것처럼 우리 성도들이 살갖이 어린 아이 살갖으로 회복하게 하옵소서. 이방인들에게 이런 축복을 허락하신 주님 우리 아버지 자녀인 우리에게도 이런 축복을 허락하옵소서.

가능하면 모든 성도들에게 허락하옵소서.

먼저 급하게 요구하는 간절한 사람에게 먼저 응답하옵소서. 저가 제일 급합니다. 나만 나만 나만 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은혜를 베푸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