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14 역대기하강좌 23-25요아스와 아마샤의 의 활동



23장은 요아스의 등극과 아달랴의 몰락 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아달랴가 6년 동안 폭정을 거듭하고 있을 때 다윗언약인 삼하7:12-166:16)은 영영 무산 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꼭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제사장 여호야다와 사명자들로 하여금 다윗왕가를 회복하기 위한 혁명을 빈틈없이 준비하게 하셨다. 그리하여 마침내 정하신 때가 이르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그리고 유다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혁명은 성공리에 막을 내리고 다윗의 자손 요아스가 왕으로 등극했다(1-16). 아달랴를 축출하고 요아스를 등극시킨 여호야다의 혁명은 다윗왕가의 회복뿐만 아니라, 성전제사제도를 바로잡고 하나님과 유다 백성들 사이의 언약관계를 새롭게 하기 위한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24장에서는 23장에 이어서 성전을 수축하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요아스가 어린나이에 이렇게 다윗의 정통성의 회복의 연결 끈을 잇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제사장 여호야다의 의 도움이 컸다. 그리고 어머니 시비아라 역시 도움이 컸다. 이것을 어릴 때의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 것은 어머니와 스승의 도움이 굉장하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1-2). 요아스의 정치 행위 중 가장 중요한 사역은 역시 성전 수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아댤랴의 만행과 잔학 행위인하여 너무 성전이 퇴락되었기 때문이다(2-7). 그래서 등극과 동시에 성전수축을 위한 모금을 진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3년이 흘러도 성전 수리 작업은 진행되지 아니했다. 그러자 요아스는 여호야다의 자문을 얻어 재2의 성전수축 계획안을 발표한다. 성전수리 헌금은 제사장들이 받지 못하게 하고 담당자가 직접받고 책임도 전문가가 직접진다(왕하12:7-15). 그래서 온 백성이 자발적인 참여로 우상에서 빠져 나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모습을 성전 수축을 통하여 보여 주었다(8-14). 그러나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요아스의 통치방법은 바뀌었다. 그의 반대 진영의 입김이 세지면서 요아스는 우상 숭배로 빠져들게 되었다. 이때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통하여 경고했으나 오히려 스가랴를 성전 뜰안에서 죽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전면적 도전이다(17-22).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는 아람왕 하사엘을 통하여 징벌이 내려졌다. 유다 방백 모두가 살해되었고 요아스는 그의 신복 요사갈과 여호사바드에 의해 살해 되었다(23-37),

25장에서는 9대왕 아마샤의 통치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고 있는 정황이지만, 그는 정직히 율법을 잘 지키려고 애를 썼다. 그 예로서 아버지 아마샤를 죽인 신하만 죽이고 그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했다. 중요한 것은 왕 자신에게서 리더십이 나오기에 자신을 잘 관리하는 게 먼저이기 때문이다(1-4). 그때 에돔 왕이 공격해왔다. 아마샤는 북이스라엘 요아스 왕에게 은 일백 달란트을 주고 큰 용사 10만의 용병을 협조 요청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이 그들을 돌려 보내라고 권고한다. 그리고 그들을 돌려 보내어서 큰 분노를 사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 자손은 1만을 거느리고 나가서 에돔을 모두 도륙 했다. 여기에서 자신감을 얻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에돔의 신의 우상을 가지고 왔다. 이것은 하나님을 크게 노하게 만들었다. 아마샤는 여호와를 버린고로, 그도 백성들에게 버려져서 모반을 당하여 라기스에서 죽었다.

 

시종일관 의 비밀을 요아스도 아먀사도 잊어버렸다. 둘다 용두사미였다. 왜 그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