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04 새벽이슬 에스라 강좌 9-10장 회개기도는 사역의 출발점이다.

 

9장에서는 에스라의 회개기도를 기록하고 있다. 예루살렘 귀환 후 9개월 동안 에스라 일행이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전을 정비하고 제사를 드리고 소송에 대한 재판을 하고(7:25) 등으로, 신앙의 정통성을 회복하기 위해 뜨거운 가슴으로 차 있었다. 그런데 늦게 알게 된 것은 통혼의 문제였다. 예루살렘 성전이 망한 후(B.C. 586)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던 자들과, 80년전 예루살렘에 돌아와(B.C. 537) 성전을 재건하고(B.C. 516) 하나님을 섬기던 백성들이,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오늘 날에 와서 보니(B.C. 458), 여러 이방족속들과 통혼하고 이들이 이방신들을 받아 들였다. 이것은 남왕국 유다가 멸망의 결정적 원인이 되어 바벨론 포로의 70년을 지내게 되었다는 사실인데 에스라는 늦게야 이것을 알고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1-4). 그래서 그는 통회 자복 하며 기도를 드렸다. 얼굴이 뜨거웠다. 하나님 앞에서는 내면적으로 부끄럽고, 백성앞에는 수치스러웠다. 그래서 손과 무릎을 꿇고 속옷을 찢고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치니이다.” 우리는 죄의 노예가 되어 포로가 되었으나 열왕들은 위에게 관대하여 성전을 짓게 하셨다. 고레스왕은 본토 귀환을 허락했고(1), 그의 아들 캄비세스는 관대했고, 3대에 와서 다리오는 고레스 칙령을 갱신하여 지원했고, 4대에 와서 아하수에로 왕은 유다인에게 특권을 부여하여 하여 보호해 주었고, 5대에 와서 아닥사스다 왕은 에스라에게 특권을 부여 하여 이렇게 성전을 짓고 신앙의 정통성을 찾고 하나님 나라를 회복할 수 있게 하셨다(9). 이렇게 이방인들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 다시 주의 계명을 배반했으니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10). 가나안땅에 들어와서 살면서 여러 선지자들이 외침과 교육 속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럽고 가증한 우상을 섬겼다. 그리고 나라를 잃고 성전을 빼앗기고, 이방나라에 포로로 잡혀서 고통과 수모를 당함은 바로 자신의 큰 죄로 인함이다.”라고 기도 하고 있다(11). 그러하오나 주님은 의롭도소이다. 자비를 베푸시옵소서(12) 기도하면서 응답을 기다렸다.

10장에서는 지도자인 에스라가 죄를 회개하고 울며 대성통곡하자, 성전 뜰에 있던 백성들도 회개의 눈물을 흘렸고, 남녀노소가 몰려들어 성전 뜰은 큰 회개의 처소가 되어 기도하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1). 지혜로운 교사처럼 에스라는 백성들이,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 결론을 내리기를 기다렸다. 백성들은 비록 이방족속들과 통혼이라는 큰 죄악을 범했지만 진정으로 회개하며 돌이킨 것이다. 특히 백성들 가운데 스가냐는 자신의 죄를 고백한 후에 이방인 아내와 그 소생을 내어 보내기로 다짐하면서 그와 같은 처가의 온 백성들에게 확산 될 수 있도록 더욱 강력한 개혁운동을 일으킬 것을 에스라에게 제의했으나(2-4), 이는 지도자의 진정어린 눈물과 기도가 얼마나 크게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이는지를 보여주었다. 이렇게 하여 에스라와 백성들은 이방족속과의 통혼을 회개한 다음 곧바로 그 외압을 척결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에스라는 3일내에 모든 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일 것을 유다 전역에 공포했다. 모든 자들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에스라 앞에 섰으며, 112명의 통혼 자를 찾아내었다. 이들에게 이방여인들을 돌려보내게 했다. 인간적으로는 가혹하지만 신앙의 순수성을 회복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에스라 이후 어떤 신앙의 결단이 공동체를 새롭게 했는가?